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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산업 고용조정의 양상 : 사례 연구를 중심으로

엄재연/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

2008년 리먼 브러더스의 부도를 계기로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시작되면서 조선산업 또한 불황의 늪에 빠졌다. 2009년 중소형 조선사들이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해양플랜트 부문으로의 진출을 통해 위기를 지연해왔던 빅3도 큰 손실을 입고 2015년부터 혹독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자료에 의하면, 조선산업 고용인력은 2014년 말 20만5천여 명에서 2017년 6월 기준 11만5천여 명으로 대폭 감소했다. 2018년 조선산업 고용인력 추정인원이 10만여 명임을 감안하면, 2015년 이후 현재까지 무려 10만여 명 이상의 조선소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그리고 그들이 일자리에서 퇴출되는 과정은 어떠했는가?

 

아래에서는 최근 조선산업에서 진행되어 온 고용조정의 양상과 문제점을 두 조선사의 사례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A사는 중형조선사(산별 노조)로 2010년 구조조정을 시작했고, B사는 대형조선사(기업별 노조)로 2015년부터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그리고 두 조선사의 구조조정 모두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1.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 권한과 책임의 비대칭성

정부 및 채권단이 주도해 온 한국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은 이해당사자간 협의 없이 비민주적 방식으로 진행되어 왔다. 주요 이해당사자인 노동조합은 배제된 채, 단지 “고통분담”이라는 명분아래 구조조정 관련사항에 대한 권한은 없고 책임만 지는 기형적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 구조조정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지닌 금융기관은 “고통분담”에서 뒤로 물러나고, 금융의 부실을 은폐하고 보호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 정책을 펼쳐 나갔다.

 

2. 사회적 의제 설정 : 구조조정 시기 최우선 공공의 가치는 무엇인가?

산업 구조조정 정책의 초점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경기 불황시 산업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 예측된다면, 무엇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어떠한 방식으로 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노동존중 사회’를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가 구조조정 정책에서 ‘노동존중’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세계적인 조선산업의 과잉생산 능력을 조정할 필요가 제기되지만, 지금처럼 이해당사자간 협의 없이 비민주적인 방식으로 단기적 비용절감 위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은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계를 위협하며 노사 간 갈등을 증폭시킬 뿐만 아니라, 향후 조선업 경기 회복시 한국 조선산업의 시장경쟁력 또한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심히 우려스럽다.

정부는 지난 몇 년간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십조 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하지만 그 수많은 공적자금은 모두 어디에 사용되었는가? 공적자금은 '금융의 이해'가 아닌 ‘공공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두고 집행되어야 한다. 구조조정 시기 우리 사회가 최우선으로 두어야 할 공공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의제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3. 차별적 고용조정

조선산업 고용조정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차별적 고용조정의 양상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고용지위, 노동조합 유무, 성별, 근속에 따라 사내하청 물량팀 > 사내하청 본공 > 사무기술직 여성 > 사무기술직 (장기근속자) 남성 > 직영 생산직 순으로 고용조정의 주 대상이 되었다. 특히 원하청 간의 불공정한 하도급 구조와 이중적․차별적 고용구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차별적 고용조정이 가장 심각했다. 원하청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사내하청은 원청(직영)의 고용유연성(고용안정) / 노동강도 완화 / 위험작업으로부터의 안전을 위한 완충장치(buffer)로 활용되어 왔고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가장 먼저,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가혹하게 퇴출되었다. 더구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달리 퇴직보상은 커녕 정당한 임금조차 받지 못하고 퇴출된 이들이 많았다. 또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조직되어 있지 않아 집단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고용조정의 최대 피해자가 되었다. 현재 정규직 생산직 중심의 노동조합은 이러한 차별적 고용조정을 효과적으로 방어하는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기업별 노조이든, 산별 노조이든 큰 차이가 없었다.

4. 고용조정의 주요수단 ‘희망퇴직’

정규직을 대상으로 한 고용조정에서 반강제적 ‘희망퇴직’이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측은 정리해고 보다 희망퇴직을 통한 고용조정을 선호한다. 1998년 정리해고가 법제화되긴 했지만, 정리해고는 해고 전 해고회피 노력을 해야 하는 등 법적 요건과 절차가 까다롭고 사후 분쟁 및 노사 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반면, 희망퇴직은 위로금 지급에 따른 경제적 비용부담이 따르긴 하지만, 그 자체가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 중 하나로 간주되며 노사협의를 거치지 않고서도 인력을 퇴출할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입장에서도 희망퇴직은 형식상 개별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에 의해 진행되기 때문에 노동조합이 강제적인 고용조정에 동의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희망퇴직은 고용조정을 둘러싼 노사 간의 이해대립 관계에서 특정한 절충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고용조정과 관련한 다양한 범주들(임금, 노동시간, 복지, 외주화, 해고 등)이 단체협약으로 규정되어 노사 간 협의사항에 해당되지만, 희망퇴직은 그 범주에서 제외되어 있다. 즉, ‘희망퇴직’을 통한 고용조정은 집단적 노사관계가 아닌 개별적 노사관계 영역에 방치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 사실상의 권고사직 또는 정리해고에 가까운 ‘희망퇴직’이 주요한 고용조정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희망퇴직이 노동조합의 고용보호막으로부터 벗어나 있는 외곽영역(사무기술직)에서 시작하여 점차 중심영역(생산직)에게까지 확대 실시되며 전면화되는 양상을 보인다는 점, 또한 그것이 사측의 일방적 주도로 시행되고 있다는 점 등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원칙론적 반대 입장을 넘어서는 전략적 대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5. 고용조정 관련 노사교섭의 틀 : 기업별 단체교섭 (관행)의 한계

고용조정은 임금, 노동시간, 조직, 수량적 유연성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며 기본적으로 노사 교섭을 매개로 하여 시행된다. 하지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고용조정의 대상 및 범주가 모두 교섭 틀에 포함되어 있진 않다. 고용조정 관련 노사교섭에서 특정 대상(사내하청, 사무기술직)과 특정 범주(희망퇴직)가 배제됨으로써 노동조합은 차별적 고용조정뿐만 아니라 사측이 정리해고에 가까운 희망퇴직을 인력감축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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