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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새롭게 기지개를 펴는 한국의 산별노조운동

이주호 /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금속노조연구원   |  

1998년 보건의료노조, 그리고 2000년 금속노조 출범!
이렇게 한국 사회에 산별노조의 깃발이 올랐고 그 이후 20년 세월이 흘렀다.
초기 한국 노동운동의 희망으로, 한국 사회를 바꾸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주목받던 산별노조운동은 한동안 ‘무늬만 산별’ 이라는 비판을 받다가 요즘은 곳곳에서 ‘실패’했다는 노골적인 평가까지 들린다. 분열과 무기력속에 빠진 진보정당운동에 대한 실망과 맞물려 한국 노동운동의 로망이었던 ‘산별노조와 진보정당’ 양 날개론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날개는 커녕 몸통부터 부실하고 취약하다는 날선 비판이다.

이렇게 한국 산별운동은 채 피어보기도 전에 시들고 마는가? 누구 말처럼 진정한 진보라면 다 하방해서 비정규직 현장운동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하지만 그렇게 비관적으로 청산적으로 지난 20년 1기 산별운동을 마감하기엔 어딘가 아쉬운 구석이 많다. 물론 그런 비판을 자신있게 반박할만큼 우리 산별운동이 구체적 성과를 내면서 안정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고 자신있게 말 할 순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난 20년 가까운 다양한 실천과 실험이 모두 실패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더 이상 해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하면 할수록 할 수 있는 길이 새롭게 보인다는 것이다.

올해 금속노조가 확 달라졌다. 변신의 노력이 눈에 띈다.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내딛으면서 내부 조직체계 논쟁에 집중하던 이전 모습과는 달리 최근에는 산별중앙교섭과 재벌그룹사 공동교섭, 그리고 재벌개혁투쟁 등으로 새롭게 판을 짜면서 시선을 밖으로 돌리고 있다. ‘조직’에서 ‘컨텐츠’ 쪽으로 실천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산별중앙교섭에서 실노동시간 연간 1800시간 단축 합의는 주 35시간 노동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연장노동, 휴일노동을 근본적으로 폐지하겠다는 시대적 화두와 조직적 의지를 담고 있다. 그리고 청년실업해소 대책과 법정최저임금 +130원 산별최저임금 합의, 그리고 현대 기아차 등 대공장 산별교섭 참가를 위한 징검다리 투쟁으로서 현대 기아차 그룹사 산별교섭 병행전략 추진, 주요 교섭의제로 재벌개혁 요구, 재벌개혁운동과 이를 위한 연대 기구 결성, 그리고 15만 산별 총파업투쟁까지, 금속노조는 그 어느 해보다 산별의 힘과 가능성을 안팎으로 아낌없이 보여준 한 해였다. 이는 금속노조가 완전한 산별교섭 성사와 금속 산업정책 개입투쟁으로 나아가는 본격적인 신호탄으로 보인다.

사실 올해 금속노조의 이런 산별투쟁은 그동안 우리 보건의료노조가 꾸준히 진행해오던 산별운동의 발전 지점과 고민에 맞닿아 있다.
우리 보건의료노조는 출범 초기부터 산별운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산별교섭 성사와 산업정책 개입을 통한 의료공공성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 성과로 2004년부터 2009년까지 산하 거의 모든 병원 사용자가 참가하여 임금교섭을 포함한 산별중앙교섭을 진행하였고, 보건의료산업정책 개입을 통해 의료 공공성 강화의 구체적 성과물을 만들면서 산별노조의 존재감을 높여왔다.

하지만 2009년 노사간 이견으로 산별교섭이 전면 중단된 이후 보건의료노조는 산별교섭 정상화를 위해 보다 매년 단계적으로 유연한 산별교섭 성사 투쟁을 전개하는 한편 대정부 대국회 교섭과 투쟁을 통해 보건의료산업정책 개입에 더욱 더 힘을 쏟아왔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 보건의료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안전은 하나의 몸통으로 의료 민영화 정책이 아니라 의료 공공성 강화 정책을 통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동안의 이런 노력들이 올해 조금씩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산별교섭 중단 이후 다시 정상화투쟁 과정에서 민간중소병원, 지방의료원, 특수목적 공공병원 등 43개 병원이 참가하는 산별중앙교섭이 몇 년째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불참해왔던 국립대, 사립대병원 중심으로 특성별 정책협의, 노사공동포럼과 노사대토론회 가 개최되면서 새롭게 전체 보건의료산업을 대표하는 초기업 대화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다.

올해 보건의료노조 산별교섭의 가장 큰 성과를 꼽는다면 너무나 부족한 병원인력을 확충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점과 병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병원내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올바른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제도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보건의료산업에 50만개 일자리 창출을 포함 보건의료인력 문제 해결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정 TF팀을 구성하기로 했다. 법정 최저임금 +100원을 산별최저임금으로 합의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또한 노사는 비정규직 문제해결을 위해 ▲비정규직을 더 이상 확대하지 않고 ▲상시적·지속적 업무에는 정규직 고용 원칙, 현재 상시적·지속적 업무에 사용하고 있는 비정규직을 정원으로 책정하고 정규직화 방안 마련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단체협약 및 복리 후생상 차별항목을 조사하여 차별과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단계적 방안 마련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사용하는 것에 합의했다. 성과적으로 산별중앙교섭을 마무리한 보건의료노조는 9-10월 성과연봉제 저지투쟁과 함께 ‘일자리 산별연대 교섭’ 기치 아래 인력확충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더욱 힘을 집중할 예정이다.

산별교섭 중단국면에서 산별노조의 화력을 대 자본투쟁에서 대정부 대국회 법제도개선 투쟁과 산업정책 개입투쟁으로 돌린 결과, 보건의료노조는 보건복지부 산하 의료기관평가인증위원회, 포괄간호서비스제도화 사업단, 의료관련 감염대책협의체 등에 참가해왔고, 올해 들어서는 의료전달체계개선협의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국가환자안전위원회 등으로 정책 참가 영역을 더욱 확대해나가고 있다. 이것은 보건의료계에서 보건의료노조가 70만 보건의료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자로서 그 위상을 확고히 다져나가고 있다는 중요한 증거이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노동집약산업’이지만 인력부족으로 ‘노동학대산업’이 되고 있는 병원계에 인력 수급과 숙련 문제를 시장과 민간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가 주도하에 적정인력 조사와 확보, 공공적 유지관리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기위해 ‘보건의료인력지원특별법’ 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 결과 의료계 내부에 큰 공감대를 만들면서 연내 입법화에 한걸음 더 다가서고 있다.

용인정신병원 정리해고 철회와 올바른 정신보건의료체계 확립을 위한 70여일간의 파업투쟁은 그동안 정신 환자 인권과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한국 정신보건체계의 근본적인 문제를 단숨에 사회 전면에 올려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향후 정신병원과 요양병원의 조직확대가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무상의료 운동본부와 함께 메르스 극복 국민운동본부 결성은 보건의료 시민운동의 외연을 더욱 확대시켰다.

산별노조의 또 다른 공공적 역할은 기업의 이해관계, 조직보호논리를 뛰어넘어 의료 현장의 문제점을 환자와 국민의 관점에서 적극 제기하는 것이다. 일시적 반짝 평가에 그쳤던 의료기관평가인증제도의 문제점 폭로, 메르스 사태 당시 병원명 공개 요구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촉구, 인력 부족으로 인한 반인륜적인 임신순번제 시행 폭로 등 보건의료노조는 기업별노조로서는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일들을 산별의 이름으로 해왔다. 이런 활동들은 노동의 관점에서 별로 주목을 못 받고 있지만 산별노조의 사회적 공공적 역할을 조명할 때 중요한 평가지점이 되어야한다.

금속노조와 보건의료노조의 활발한 활동을 볼 때 2016년은 우리 산별운동 역사를 새롭게 쓰는 한해가 될 것이다. 새롭게 기지개를 펴면서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올해 들어 2월 19일 산별노조 집단 탈퇴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는 다시 제대로 된 산별운동의 필요성을 재인식시켰고, 3월 30일 고대 노동대학원 주최 산별교섭 관련 노사정 대표 초청 대토론회, 정부의 금융노조 산별교섭 탄압, 금속노조 현대기아차그룹사 산별교섭 병행전략, 보건의료노조의 일자리 산별연대교섭을 내건 산별중앙교섭과 특성별 정책협의 확대 추진, 양대 노총을 넘어 5개 주요 산별노조의 내부적 산별발전전략 공동연구 진행 등은 제 2 산별노조운동으로 가는 좋은 자양분이 될 것이다. 따라서, 무늬만 산별이라는 평론가적 태도, 실패했다고 단정적으로 말하는 비관주의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지난 8월 29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 128차 노동포럼에서 미국 시카고 대학 이철승 교수가 연구 발표한 ‘산별노조운동의 성과와 한계 – 산업내 그리고 산업간 임금 및 사회보험의 불평등 추이’ 는 한국 산별운동 평가와 논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면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이 교수 주장의 요지는 ‘서구 따라 하기식 운동을 탈피해서 한국 산별운동을 둘러싼 지형지물을 잘 살핀 후 한국의 역사적 배경과 문화, 사회에 맞는 운동전략으로 현실에서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중심으로 산별운동을 하자는 것이다. 산별노조가 추구하는 평등화, 임금 평준화 투쟁이 승리하려면 ‘시장’ 을 통한 재분배투쟁보다 ‘국가’를 통한 재분배투쟁이 훨씬 더 유효하므로 대정부 정치투쟁에 힘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년 산별운동에 대한 실증적 평가를 통해 산업별 연대임금을 통한 임금 불평등 해소는 난망하므로 사회 안정망 확대, 사회보험 불평등 해소에 더 집중하자는 제안이다.

나는 여기서 조금 더 논의를 진전시키기위해 향후 산별운동의 과제를 3가지로 제안하고자한다.
첫째는 주체역량 강화 차원에서 산별노조운동의 내실화를 다지기위해 산별 조직체계의 정비, 사람과 재정의 집중. 실력 있는 집행력을 갖추기위해 보다 긴 호흡의 준비와 노력, 기존 관성을 넘어 조합원과 국민에게 열정과 감동을 줄 수 있는 활동에 더욱 매진해야한다.

둘째는 초기업 노조 활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산별노조의 직접적 정책수단이 될 수 있는 초기업 교섭 구조가 시급히 확보되어야한다. 구체적으로 “전국 단위에서 노사정 사회적 대화, 정부 위원회 참여 – 산별 단위에서 산별교섭, 지역교섭 활성화 – 현장 단위에서 노동이사회 도입 및 공동결정제도, 경영참여” 등 3층 영역에서 총체적으로 노사관계개혁 입법, 특히 산별교섭 제도화를 위한 입법이 단계적으로 추진되어야한다.

셋째는 산별노조운동 활성화를 위해서는 초기업 노사관계 문화와 다양한 인프라 구축을 적극 고민해야한다. 구체적으로는 체계적 노동교육과 연구를 위한 노동재단 설립,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정치참여, 진보정치 활성화를 위한 정당명부 비례선거제도 전면 도입 등이 적극 검토되어야한다.

마지막으로 다가올 대선 국면에서 우리는 “노조 조직율 50% 사회” “노조 할 권리, 노동 3권을 완전히 보장하는 사회” 가 바로 진정한 경제 민주화가 실현되고 1:99 사회를 넘어 평등사회 복지국가로 가는 핵심 비결임을 주장하면서 이 의제를 중심으로 전면적인 노동 담론 투쟁을 벌어야한다. 이를 위해 북유럽 국가처럼 초기업노조 활성화, 고용보험 노조 운영권 보장, 노동회의소 건립, 부당노동행위 엄벌 등 다양한 정책수단이 제안되고 토론되어야한다. 그리고 지난 민주정부 10년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볼 때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국민의 지지와 여론을 등에 업고 조직 노동과 협치를 통해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면 결국 모든 공약과 구상은 자본과 보수 언론에 압도당하면서 후퇴하여 결국 아무런 성과를 낼 수 없다는 현실적 역관계를 직시해야한다.

새롭게 기지개를 켜는 한국 산별운동, 산별교섭 돌파, 그 선두에 금속과 보건 쌍두마차가 있다.
금속과 보건이 앞장서서 한국적 노사관계 지형에 최적화된 산별적 노동 3권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제 2 산별노조운동을 본격 추진하자. “기업(현장)의 힘에 기반을 하되 기업을 뛰어넘는 산별투쟁을 만들자! 현장 속으로 더 들어가되 밖으로 더 연대하고 산업정책에 개입하자!” 이것이 2016 우리에게 주어진 산별운동 핵심과제이다!

이를 위해 금속과 보건은 다른 노조에서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재정의 50% 이상을 산별중앙에 집중하고 있는 장점을 적극 살려 나가야한다. 중앙으로 크게 모아진 힘으로 금속노조는 어려운 삼성전자서비스의 투쟁에 전략적으로 수 십억원을 쏟아 부으면서 재벌개혁투쟁의 계기점을 만들고 있고, 보건노조 또한 진주의료원 폐업반대투쟁과 성남시립병원 개원투쟁에 수 십억원 지원을 하면서 공공의료, 지역의료의 필요성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가고 있다. 이처럼 산별로 집중된 힘이 하나의 전략적 방향으로 모아진다면 얼마든지 담대한 투쟁과 구체적 성과를 낼 수 있다. 이번 대선국면을 통해 산별운동이 또 한번 질적인 도약과 전환을 맞이할 수 있도록 힘을 산별적으로 모아보자. 산별은 집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