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칼럼 > 칼럼
칼럼
 

‘87년 체제’를 다시 보게 하는 촛불 대선

김영수 / 경상대 교수
금속노조연구원   |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1987년

2017년 5월 9일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여기저기에서 ‘87년 체제’를 넘어서자는 말들도 많고, ‘개혁과 적폐청산’이라는 과제도 넘실대고 있다. SNS나 대학사회의 주요 화두도 그렇다. 촛불 대선에서 승리한 행정부가 져야할 짐이자, 권리의 자존감을 일시에 찾으려 하는 민의 욕구려니 하면서도, 적지 않게 혼란스럽다. 그 동안 무수히 많은 논자들이 말했었던 87년 체제의 의미와 내용들을 다시 짚어보자는 것이 아니다. 너든 나든 87년 체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넘어서든지 말든지 할 것이 아닌가. 1987년 6월 항쟁이나 7-9월 노동자대투쟁으로 말하면 쉽게 알 수 있는데, 굳이 ‘체제’라는 단어를 덧붙여 개념화하고 의미에 의미를 부여해 왔을까? 그 열쇳말은 아마도 ‘민의 권리’일 것이다. 87년 체제의 의미를 이 열쇳말로 찾는다면, ‘권리의 실체 드러내기’와 ‘권력의 자기화’를 위한 제도적·비제도적 정치의 체계화라는 측면이 크다. 형식화된 권리를 실질적인 권리로, 의존적인 권리를 주체적인 권리로, 그리고 권리의 시혜·수혜적인 관계를 투쟁·쟁취적인 관계로 재정립하는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쉽게 그려지는 1987년의 모습에서 87년 체제의 실체성을 찾아보자. ‘1980년 광주항쟁의 슬픔과 분노를 반독재 민주화운동으로 승화시키면서, 광주학살의 주모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권력체제를 ‘민’의 돌과 화염병으로 무너뜨리고, ‘민’ 스스로가 자신의 권리를 싸움으로 쟁취함과 동시에 민의 권리로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을 직접 선출했던 환희의 시기였다.’ 1960년 4.19항쟁 이후, 민이 정치의 주체이자 권력의 주인임을 부활시키는 과정이었다. 이것은 쉽게 오지 않았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돌아가신 수많은 희생자들뿐만 아니라, 광주항쟁 이후 1987년 6월항쟁 이전까지 노동현장에서 노동 권리를 위해 싸우다가 감방에 갇히거나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 덕택이다. 물론 1987년을 다르게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군부독재체제의 권력자들이 권력교체를 평화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민’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그 과정에서 비교적 합리적인 지배세력들이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전략적으로 선택했다는 것이다.

메모리칩에 저장된 87년 체제의 수많은 사진들이, 아니 30년 전에 묻었던 희망단지 속의 바람들이 한 편의 영화처럼 마음을 적신다. 이 사람에게는 용감무쌍한 전사의 모습으로, 저 사람에게는 두려움에 떠는 약자의 심성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희망의 조각과 파편들을 모아서 모자이크처럼 멋들어지게 만든 시대의 작품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렇다면 87년 체제를 만들던 구축하던 당시, ‘민’의 희망은 무엇이었기에, 그 희망이 지난 30년 동안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고 왜곡되었기에, 혹은 어떤 희망이 어떤 수준에서 실현되었기에 87년 체제를 극복하자는 것인가? 2016년과 2017년의 촛불 희망이 또 다시 좌절될 수 있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표출하는 것인가. 오히려 87년 세대(386세대)가 아니라, 87년 체제는 지속되고 강화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권력의 주인으로 나가지 못한 민의 의존성

87년 체제의 디딤돌은 권리를 향한 ‘민’의 의지였다. 개인의 수준을 넘어 집단과 집단의 의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독재 권력의 아성이 허물어졌다. 제도 밖에서 일어난 ‘민’의 ‘직접정치와 권리찾기’가 87년 체제의 뇌수로 자리하게 되었다. 87년 체제는 ‘민’에게 헌법과 대의제도를 돌려주었다. 헌법의 권리와 의무가 삶속으로 들어왔고, 자유와 민주를 일상의 가치로 여기게 되었다. 누구든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데 권력은 ‘민’을 정치의 변방으로 내쫒았다. 권력은 민의 저항성이 화산처럼 폭발하는 그 순간만큼은 민의 권리에 순응하다가도, 민의 일상적 평화가 도래하자마자, 싸움을 방관하고 경원시했던 ‘민’의 변덕성을 이용해서 ‘민’의 실체적인 권리를 인정하지 않거나, 민의 권리를 박물관에 박제화하곤 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지적했던 ‘민’의 변덕성이 스멀스멀 폐부를 찌르기 시작한다. “인간이란 은혜를 모르고 변덕스러우며 위선적인데다가, 기만에 능하며 위험을 피하려고 하고, 이익에 눈이 어둡기 때문에, 당신은 사람들의 재산과 명예를 빼앗지 말고 오히려 은혜를 베풀어 당신에게 온갖 충성을 바치며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마키아벨리의 통치전략이 틀리지 않았다는 말인가.

권력은 국민의 권리로부터 나왔지만, ‘민’에게 부여된 권리는 대의정치를 위해 던지는 투표용지만으로 한정되었다. 이 말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87년 체제는 민에게 헌법의 모든 권리, 특히 집회 및 시위의 권리를 자유롭게 보장하였고, 또한 제도적 개혁정치와 비제도적 진보정치의 토대를 강화하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의제도는 민을 권력의 주인으로 만들지 않았으며, ‘민’ 스스로도 권력의 주인으로 행세하려 하지 않았다. 권리를 대리해서 행사하는 것이 편했는지 모르지만, ‘민’은 권리의 주체이자 권력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민’ 스스로 ‘권리 숨기기 혹은 권리 타자화’를 새로운 방식으로 강요하기도 하였다. ‘민’은 권력의 주인이 되기 위한 싸움을 지속하면서, 권리의 주체라는 목소리만큼은 끊이질 않고 질러댔지만, 이미 다른 세력에게 넘어가 버린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는 ‘권력의 주인되기 여정’에 쉽게 동참하지 않았다. 의존하는 것이 편했고, 상대적으로 민주적인 권력의 정치세력을 통해 대리만족하는 것이 안전했다. ‘민’은 이 과정에서 길들여지고 스스로가 불만을 줄여나가는 권력의 대상으로 안주하고 말았다.

권리의 자존감을 되찾은 2017년 대통령선거

2016년 11월부터 시작된 ‘민’의 촛불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 탄핵을 강제하고 난 이후, ‘민’의 권리를 허접한 쓰레기로 여겼던 자들에게 감옥행 수갑과 잠자리를 안겨주었다. ‘민’은 제도정치나 정당정치가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거리에서 직접 해결하는 정치적 주체로 나섰고, 국가의 입법권력과 사법권력을 포획하였다. ‘민’은 삶의 질이 악화되고 존재기반의 불안정성이 극대화되는 상황에서, 자신의 주권과 권리를 허접한 쓰레기로 만들어버린 권력의 야수들에게 1987년에 확보했던 권리의 자존감까지 맡길 수 없었던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는 아주 미미한 수준의 명맥이라도 유지했던 권리의 자존감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하나씩 하나씩 빼앗기고 박탈되는 상활이 발생하자, 그 상실감은 오히려 촛불 항쟁의 불씨로 작용하였다.

촛불 항쟁은 정권 교체, 아니 새로운 정당의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주춧돌이었다. 대부분 정권교체라고 하고 있으니, 그것에 토를 달고 싶진 않다. 2016년 11월부터 2017년 4월까지 꺼지지 않았던 촛불의 소망이 부분적으로 실현되어서 그렇다. 국민 모두가 상실했던 권리의 자존감을 조금이나마 되찾은 것 같고, 동시에 무엇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시작하자고 말하지 않으면서도 누구나가 지금부터 실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또 다른 촛불의 꿈을 꾸고 있다. 촛불의 염원인 적폐청산이나 국가개혁에 대한 상상이다.

그러나 눈에 잘 보이고 또 제도화된 폐습들을 청산하거나 개혁하는 작업도 그리 만만치 않지만,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폐습들을 어찌해야 하나. 더군다나 사람들의 마음 속 깊게 똬리만 튼 채 그 형체를 감추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하는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행정부가 앞으로 ‘민’의 촛불을 세상이 변하는 들불로 바꿀지 아니면 특정한 시공간만으로 제한되고 미적지근하게 꺼져버리는 산불로 바꿀지 그 누구도 예단하지 않고 있지만, 적폐의 심장부인 자본의 구조와 사람들의 마음까지 바꾸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만큼은 누구나가 하고 있다. 촛불이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의 불꽃으로 발화되었지만, 그 심지는 정말 넓고 깊은 곳에 숨어있기 때문이고, 또한 아주 협의의 수준에서 보더라도, 정권교체는 의회권력이나 사법권력을 구조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지배체제의 변화까지 이루어지지 않아서이다.

권리의 주체성을 넘어 ‘권력의 주인되기’

민주주의는 실현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와서 권리의 실체성을 구축하고 또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가치이자 실체이다. 문재인 행정부가 지난 시기의 권력과는 달리 새롭게 ‘인사개혁’을 시작하는 것도 권력의 또 다른 실체이다. 환호성을 지르며 대리만족하든, 한바탕 쏟아지다가 멈추어버릴 소나기로 치부하든, 시대의 흐름이자 현상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민’은 이러한 실체가 조만간에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사실까지도 이미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문재인 행정부를 바라보는 ‘민’의 이중성이다. ‘민’의 눈과 마음이 딜레마에 빠져버린 것이다. ‘민’의 진보정치나 계급정치까지 실제로 궁지에 몰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지점은 ‘민’이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정표이기도 하고, 권력의 주인을 실제로 바꾸어 나가는 과정의 좌표이기도 하다.

촛불이 소위 정권교체만을 원하지 않았는데, 단지 행정 권력의 교체만이 이루어진 화려한 조명 속에서, ‘민’의 민주적 가치와 실체가 과연 정권교체의 뒤안길로 사라져도 좋다는 것인지? 서로가 서로에게 묻고 답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개혁이라는 통치전략은 늘 민의 권리정치를 보듬어주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민’ 스스로 거절하기 어려운 권력의 부드러움이다. 여기에 중독되는 ‘민’을 많이 만들어 권력의 동의기반을 확장하려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권력은 이를 위해 민의 공허함과 상실감을 채워줄 제한적이고 제한적인 사이다 개혁만을 찾는다. 탄산수를 마시고 난 이후에 보통의 물을 찾듯이, ‘민’은 제한적인 개혁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또 다른 개혁과 혁명의 생명수를 찾으려 한다. 자신의 답답함을 스스로 풀어보겠다는 몸짓이다. 개혁을 권력에게 맡기는 것이 아니라 권리주체인 자신의 몫으로 끌어오는 자연스러움이다.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사회적 총파업의 정당성도 바로 여기에 있다. 개혁이나 적폐청산이 ‘민’의 권리를 대상화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실제 주인인 ‘민’을 주체화하는 과정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권리이든, 한 조직의 권리이든, 그것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자유로워야 하고, 야단법석처럼 시끌벅적해야 한다. 이 과정이 곧 권리의 자존감을 키우면서 권력의 주인이 되어 가는 민의 기나긴 여정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