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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 가장 나쁜 자본주의?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자본주의의 발전과 변화는 기술혁신과 궤를 같이 한다. 증기기관의 발명과 함께 일어난 1차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전기와 전자기술의 혁신을 통해 일어난 2차 및 3차 산업혁명을 지나, 이제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와 함께 얼마 전부터 새롭게 등장한 거대한 디지털 플랫홈기업들이 세계의 경제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것일까? 

 

먼저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것이 있다. 디지털 시대와 함께 ‘공유경제’의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각박한 경쟁사회에서 숨 가쁘게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서로 협력하고 나눈다는 공유경제의 달콤한 뉘앙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좀 더 들여다보면 공유경제는 커녕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착취적인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쓰지 않는 자신의 자동차나 집 또는 물건이나 기계 등을 플랫홈을 통해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것, 실시간으로 플랫홈을 통해 무료로 제공되는 각종 정보와 서비스, 이를 기반으로 발전하는 ‘한계비용 제로사회’, 온라인 군중이 참여하여 같이 문제를 해결하는 ‘크라우드 소싱’ 등등, 공유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드는 사례들이다. 일견 타당성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이들은 수많은 사람과 물건이 오고가는 플랫홈 그 자체가 공유문화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덕택으로 이제 사적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경제를 넘어 협력과 공동의 이익을 가져오는 공유경제가 발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앞서 말한 그대로 된다면야 공유경제의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차와 집을 플랫홈을 통해 제공하는 것은 쓰지 않는 자원을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 된지 오래다. 공유가 아니라 ‘사업’이 되어버렸다. 이와 함께 비시장적 영역은 사라진다. 우리의 개인적 사생활과 물건이 모조리 상품화되고 있다. 그리고 인터넷의 연결의 힘으로 전 세계로 확장된다. 공유경제가 아니라 이윤을 극대화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탄생이며, 이 자본주의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게 팽창하고 있다. 이윤추구라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가 인류 전체에, 그것도 공적, 사적 영역을 가리지 않고 전 영역에 침투되고 있다.

 

디지털 자본주의가 탄생했다는 것은 애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플랫홈 기업들이 세계 10대 기업의 최상위를 차지한다는 것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들은 알고리즘이 생산수단이 되고, 데이터가 핵심원료가 되는 디지털 자본주의를 만드는 주역들이다. 여기에서는 지난 산업자본주의 시대처럼 공장에서 물건을 만들고 이를 팔고 사는 방식이 아니라, 데이터와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과 조직이 자본증식 방식의 주요 특징이 된다. 이러한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는 정보의 공급이 수도나 전기처럼 공공재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점은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의 공공재(정보)는 정부가 아닌 시장에서 개별 사기업이 조직하고 관리하는, 즉 완전 민영화된 형태라는 것이다. 위험천만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과거에는 크고 작은 많은 기업들이 각 나라의 지역시장에서 옹기종기 존재할 수 있었지만 이제 네트워크로 통합된 세계시장에서는 승자독식이 이루어져 슈퍼스타와 빅브라더가 탄생한다. 디지털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정보를 독점하는 몇몇의 거대 플랫홈기업들에 개인과 기업 또는 심지어 국가마저도 종속된다. 정보가 결정적인 경제활동의 요소가 되는 디지털 시대에 그 안전과 보호를 위한 ‘데이터 주권’은 우리의 손에 놓여있지 않다. 더구나 이들은 세율이 적은 나라로 서버를 옮겨 놓고 탈세를 일삼는다. 지역에 뿌리를 둔 중소기업들은 마땅한 세금을 내고, 지역 내 육아시설이나 양로원, 학교 또는 체육시설 등에 기부하면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승자독식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글로벌 플랫홈 업체들은 전혀 이러한 책임감이 없다. 2000년대 중반부터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이른바 ‘구글세’는 이러한 글로벌 IT기업의 독과점과 조세회피의 문제를 풀기 위한 것이다. 빅브라더의 파렴치한 행동에 일침을 가하고자함이다.

 

그런데 빅브라더의 탄생과 성장을 주도하는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우리다. 디지털 자본주의 속에 숨어있는 아이러니다. 플랫홈을 통해서 일어나는 정보의 생산과 분배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경제와 사회적 활동의 핵심이 된다. 그런데 그 귀중한 정보를 만드는 일은 이른바 ‘유저’라고 불리는 우리들이다. 우리는 플랫홈의 무료 서비스에 유인되어 매일같이 플랫홈에서 일을 한다. 쉬지 않고 콘텐츠를 생성하고 전송한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전류가 흘러야 하듯 지금은 끊임없이 데이터가 흘러야 하는데, 이 일을 우리가 한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빅 데이터의 생성자이고, 자본은 여기서 이윤이 될 수 있는 정보를 지속적으로 채굴한다. 이는 누구에게나 조건 없이 ‘기본소득’을 주자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모두가 디지털 자본주의의 기여자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우리는 무료로 디지털 자본주의의 황금이라 할 수 있는 데이터를 생성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무런 권한이 없다. 플랫홈 운영자에 의해 주어진 형식과 규칙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날 산업자본주의가 물질적 원료의 채굴과 노동의 착취로 성장했다면 지금은 플랫홈에서 정보의 채굴과 유저의 착취로 성장한다. 그래도 산업자본주의 시대에는 단체협상, 공동결정, 노사협의회 등 이해관계의 조정수단이 존재했으나 디지털 자본주의 시대에는 유저의 착취를 막을 마땅한 도구가 없다.

 

디지털 자본주의에서는 ‘탈경계화’가 폭넓게 일어난다. 디지털 기술은 세계화를 촉진시켜 국가 간 경계를 무너트리고 자본의 이동성을 높여 복지사회의 위기를 가져왔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시장과 비시장의 경계도 허물어져 온통 세상이 ‘시장화’된다. 언제 어디서나 직장과 연결됨으로 인해 일과 생활의 경계도 무너져 노동시간은 끝없이 펼쳐진다. 더구나 디지털 기술은 사이버 전쟁의 시대를 만들어 전쟁과 평화의 경계까지 없앤다. 평상시에도 해킹을 당하거나 공격을 받을 수 있으며, 전투원과 민간인과의 구분도 어렵다.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우리는 전쟁 중인지도 모른다.

 

이렇듯 곳곳에서 탈경계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오직 한 군데서 경계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 부자와 가난한자와의 경계, 즉 사회적 불평등의 경계다. 무너지기는커녕 디지털 경제가 발전하면서 오히려 이 경계는 더 공고해지고 있다. 사회적 정보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디지털 특고노동자’라 불리는, 새로운 불안정 노동계급인 ‘프레카리아트’(Precariat)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사회적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세습화되고 있다. 있어야 될 경계는 무너지고, 무너져야 할 경계는 더 고착화되는 희한안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가 공유사회를 만들고 있지 않음은 분명해 보인다. 오히려 역사상 가장 나쁜 자본주의를 만들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나쁜 자본주의에 고삐를 꿰어 잘 다스려 나가야 할 터인데, 어떤 고삐를 만들지, 어느 방향으로 죄어야할지 심각한 고민이 필요할 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