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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금속노조의 ‘공정한 전환’을 위한 외침

이문호/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얼마 전 독일 금속노조에서 인포서비스(Infoservice)가 메일로 왔기에 열어봤더니, 6월 29일 베를린에서 대규모 집회를 여니 참가하라는 것이었다. 독일 전국에서 조합원이 모일 것이라고 했다. 필자야 물론 못가지만 뭐 때문에 그런 전국 단위의 대규모 집회를 여는지 궁금해서 내용을 살펴보았더니, 집회의 슬로건은 ‘공정한 전환’(#FairWandel)이었다.

 

공정한 전환! 작금의 급격한 기술변화로 인한 노동세계의 불안을 없애자는 구호다. 기술혁신은 받아들이겠는데, 그것이 노동자의 희생을 요구해서는 안 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도 독일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노사정의 대화를 통해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기술혁신을 추진하는 ‘인더스트리 4.0’도 있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노동의 희생을 가져오는 것을 막기 위한 ‘노동4.0’이라는 정책도 있다. 기술정책과 노동정책을 결부시켜 기술과 노동이 조화롭게 발전해 나가는 사회를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독일의 금속노조는 각종 협의체에도 적극 참여, 주도적인 역할을 하면서 정부와 기업에 노동자의 목소리를 나름 잘 대변하고 있다. 노동4.0이 실제로 사업장까지 실현될 수 있도록 노동부와 협력해 나가고 있으며, 경제부와는 디지털 시대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산업의 미래를 위한 연합’(Bündnis Zukunft der Industrie)이라는 노사정 협의체를 만들었다. 여기에는 11개의 사용자 단체가 참여하고, 5개의 분과로 구성되어 있다. 제조업 발전전략, 투자와 경쟁력 강화, 인력개발 등의 주제를 다루는 각 분과는 노사가 공동의장을 맡고 있으며, 논의 내용은 정책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또한 전기차 발전을 위해 만든 ‘국가전기차 플랫홈’이라는 사회적 협력기구에도 참여, 전기차 정책 방향을 세우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술혁신을 둘러 싼 노사정 협의체가 잘 돌아가는 듯이 보여, 디지털 전환과정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나 생각했는데, 노조의 입장에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노조는 정부와 기업이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분명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모여 ‘공정한 전환’을 외치려고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크게 보면 세 개의 요구사항을 걸고 있다.

 

첫째, 모빌리티와 에너지 전환의 가속화다. 이를 위해 친환경차 등 미래형 제품 개발과 전기차 충전소 및 전력망 등 인프라 구축,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의 교육·훈련에 대대적인 투자를 요구한다.

둘째, 독일 내 생산기지의 보장이다. 산업공동화를 막고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공동결정 제도를 강화하고 기술혁신 과정에 노동자들의 더 많은 참여를 요구한다.

셋째, 사회적 안전망의 확대다. 많은 노동자들은 급속한 기술변화 과정 속에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 변화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모든 연령층에서 사회보장이 이루어지도록 복지국가의 강화를 요구한다.

 

전체적으로 디지털 전환은 사회적으로 공동설계 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은 실패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사실 디지털 전환을 위해 노사정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예컨대 기업에서 전기차를 개발했다 해도 그것을 만들 수 있는 숙련된 노동자가 있어야 하며, 또한 생산됐다 해도 전기충전소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면 팔리지 않을 건 뻔한 이치 아니겠는가.

 

금소노조가 대규모 집회를 여는 것은 이러한 사회적 공동설계를 위해 필요한 역할을 정부와 기업이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금속노조가 얼마 전부터 시도하는 이른바 ‘전환지도’(Transformationsatlas)를 통해 내린 판단이다. 전환지도란 금속노조의 주도 하에 개별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기술변화(디지털화)와 그 변화가 고용과 노동조건에 미치는 영향을 부서별 단위까지 상세하게 그린 지도를 말한다. 이 지도의 목적은 사업장에서 기술변화로 인한 기회요소와 위험요소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그에 합당한 맞춤형 전략과 방안을 세우고자 하는데 있다.

 

노조는 지금까지 수백 개의 사업장에서 만든 전환지도를 놓고 볼 때 기술혁신의 기회요소보다는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 등 위험요소가 더 많이 나타난다고 평가하고, 더 이상 내버려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속도와 수준의 차이는 있지만 가공 및 조립, 행정, 물류 등 기업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는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많은 기업에서 이 디지털 전환을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지 않아 노동자의 희생이 뒤따를 위험성이 크다는 것이다.

 

특히 자동차산업의 문제가 심각하다. 전기차 생산이 본격화되면 절반 이상의 기업에서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보이며, 내연기관에만 들어가는 부품을 생산하는 업체는 아예 기업의 존립 자체가 문제가 된다. 이들은 새로운 제품과 사업모델 개발에 투자를 해야만 일자리 보전이 가능하나, 이러한 방안을 세우는 기업은 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면서 노조는 기업에게 미래를 위한 준비를 강하게 촉구한다. 신제품과 새로운 사업모델 개발을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고, 변화에 대처하고 이끌 수 있도록 인력개발을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는 것이다. 이는 전체 구성원들과 함께 해야만 성공할 수 있으며, 따라서 공동결정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통해 디지털 전환은 더 빠르고 더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지자체 또는 정치권에도 할 얘기가 많다. 무엇보다 모빌리티와 에너지 전환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 신경을 써야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소홀히 한 채 환경규제만 강화하면 신제품(친환경차)은 생산하지 못하고 구제품(내연기관 자동차)만 퇴출 돼, 결국 일자리만 상실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산업 클러스터 지역은 4차 산업혁명에 특히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구조적 변화를 위한 ‘구조전환펀드’ 조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와 함께 ‘전환을 위한 단축노동임금’(Transformations-Kurzarbeitergeld)을 요구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이는 새로운 노동정책적 대안으로 기업이 구조 전환 시 단축노동이 필요할 때 국가의 지원으로 임금을 (상당부분) 보전해 주는 제도를 말한다. 많은 기업들에서는 변화의 시기에, 예컨대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제품 라인업을 전기차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기존 내연기관차의 생산량이 줄어들어 여유인력이 발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전환과정은 시간이 꽤 걸릴 수도 있다. 이 때 해고 대신 단축노동을 실시하면 임금보존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전환을 위한 단축노동임금’이다. 또한 변화과정에서 전환배치나 새롭게 요구되는 숙련과 학습을 위해 교육이 필요할 때도 많다. 이는 고용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단축노동을 실시할 때도 임금을 보전해준다. 이는 직접 생산직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간접직과 사무직에도 해당된다. 노동자의 희생 없는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정책의 일환이다.

 

정부와 기업이 노조의 이러한 정책적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공정한 전환을 위한 독일 금속노조의 외침은 정부와 기업을 더 많이 움직이게 만들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에게 시사 하는바가 크다. 그리고 성찰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환기 시대에 한국의 노동자는 어디에 서있는 것일까? 공정한 전환을 위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