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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혁신성장과 숙련 향상 교육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세계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구조적 저성장 기조를 이어가는 이른바 ‘뉴노멀(New Normal)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국 경제도 2000년대 이후 과거 경제를 이끌었던 주력 산업의 위기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다. 위기의 징후는 미시적인 기업 성과와 거시적인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통해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경제가 고도 성장기에 취해온 추격 전략(Fast Following)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성숙기에 진입한 것이다. 자동차, 조선, 건설 등 그간 한국경제의 주춧돌 역할을 수행한 주력산업들은 정체기에 진입하였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한국의 자동차산업’ 보고서(2019)에 따르면 2018년 국내 자동차 생산능력은 453만5천대로 2003년(439만6천대) 이후 가장 낮았다. 자동차, 조선뿐 아니라 그간 수출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반도체 또한 경기침체기에 진입하였다. 

 

현 상황은 ‘혁신’을 통한 경제의 역동성 강화에 의하여 그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런데 물적 혁신은 한계에 도달하였고, 혁신은 생산 및 연구개발 전 과정에 전문성과 창의적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어야 가능하다. 현 정부도 ‘사람중심의 경제’ 기조 하에서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을 양대 축으로 추진 중이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사람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사람의 ‘혁신’ 능력을 배양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혁신 성장의 핵심은 해당 산업 노동자들의 혁신 역량이며, 혁신 역량은 교육훈련에 따라 좌우된다.

 

교육훈련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전체적인 직업능력개발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이다. 국내 재직자의 교육훈련은 교육 참가자의 비중, 교육훈련 시간, 교육훈련 비용 등 제반 요소를 다른 국가와 비교할 때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연간 교육훈련에 참여한 종업원 비중은 한국이 30.8%로 EU 평균 40.8%에 비해 낮다. 기업 규모별로 보면 한국과 EU 평균의 소기업(10~49인)은 각각 24.3%와 30.0%, 중기업(50~249인)은 32.2%와 37.2%, 대기업(250인 이상)은 35.3%와 47.7%로, 한국이 모든 기업규모에서 EU 평균에 비해 비중이 낮다.또한 인당 교육훈련시간은 종업원 1인당 연간 6.5시간으로 EU 평균 10.0시간에 비해 짧다. 한국과 EU 평균의 소기업은 각각 4.1시간과 7.2시간, 중기업은 5.3시간과 9.2시간, 대기업은 9.7시간과 11.7시간으로, 한국이 모든 기업규모에서 EU 평균에 비해 인당 교육훈련 시간이 짧다. 한국의 인당교육훈련 비용은 직접비용 기준 종업원 1인당 연간 56유로로, EU 평균 245유로에 비해 적다. 한국은 EU 평균의 23%로, 인당 교육훈련 시간의 격차(65%)보다 훨씬 더 큰 격차가 나타났다. 한국과 EU평균의 소기업은 각각 14유로와 147유로, 중기업은 39유로와 200유로, 대기업은 105유로와 312유로로, 한국이 모든 기업규모에서 EU 평균에 비해 교육훈련 비용이 적다.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한국과 EU 평균의 격차가 크며, 특히 소기업은 비교 대상국 중 최하위였다.

 

인적자원개발에 대한 낮은 투자와 교육훈련의 취약성은 노사관계 양 주체들의 불신 및 교육훈련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비롯된 결과이다. 한국은 산업현장의 ‘자동화’가 가장 빨리 진행되고 있는 나라이다. 노동자 1만 명당 적용된 제조 로봇의 수를 나타내는 ‘로봇 밀도’가 710대로 전 세계 평균(85대)의 8배를 웃돈다(2017년 말 기준). 로봇 도입을 주도하고 있는 부문은 제조업이며, 그 중에서도 전기전자와 자동차산업이 핵심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의 제조업인 스마트 팩토리는 이를 더 가속화할 것이다. 노동조합의 규제 없는 자동화는 노동자의 고용위기로 귀결된다.

 

기업의 교육훈련 투자는 불완전한 계약의 전형이다. 계약이 불완전할 때는 형식적인 계약 내용보다는 거래 당사자 간의 관계가 중요하다. 노사 간 신뢰와 호혜성이 작동해야 교육훈련 투자가 늘어난다. 한국 노동자의 호혜성에 의한 동기부여가 취약하고, 경영자 역시 이에 대한 신뢰가 낮다면, 노사 간 계약의 불완전성을 증폭시키는 기업의 교육훈련투자는 발생할 수 없다. 교육훈련이 중요하더라도, 교육 받는 노동자가 언제가 직장을 떠난다고 경영자가 믿는다면 교육훈련투자는 최소한으로 억제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숙련을 활용하는 경영전략이 아닌, 숙련을 배제하는 방식의 경영전략을 선택하게 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성공의 경험을 축적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는 거대한 충격이 아니라 작은 것의 지속적 누적을 통해 조금씩 진화해 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자의 참여를 증진하고 자율과 재량의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일터혁신이 중요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노동자의 교육훈련은 노동자 자신을 위해서도 그 필요성이 증가한다. 노동 4.0(Arbeiten 4.0) 시대는 네트워크화, 디지털화, 유연화로 요약되며, 노동자들은 스스로 고용가능성(employability)을 높이고, 또한 새로운 직업을 탐색할 수 있는 경력개발 지원이 요구된다. 이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교육훈련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개입이 에 힘을 쏟을 시기이다. 노동자가 각종 교육훈련개발에 참여하고, 노동자의 기능 향상 및 생산 과정과 관련된 의사결정에 관여하거나, 이사회와 같은 다양한 수준의 경영참여를 위한 전략적 접근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립적 노사관계가 참여 협력적 관계로 바뀌어야 하고, 경영진의 노동 배제적 경영방식이 중단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의 참여와 개입은 노동자에게 고숙련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산하고, 사용주의 요구(needs)와 노동자의 요구가 반영된 교육훈련을 제공할 수 있다. 노동조합의 적극적인 참여는 노동자의 숙련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저숙련 함정(low skill equilibrium)에 빠지지 않고 노동조합의 울타리 안에서 노동자의 직업능력을 개발하여 고용안정과 수입의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노동조합이 고용안정을 위한 숙련 형성을 교섭 의제로 삼을 때 기업에서 재직자 직업능력개발이 증가할 수 있다. 작업장 혁신과 노동자의 능력 개발을 위한 적극적인 참여는 당면한 노동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