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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없는 4차 산업혁명

김성혁 /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장
금속노조연구원   |  

1. 3기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

 

대통령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3기(윤성로 위원장)가 2020년 2월 19일 기대도 관심도 없이 슬그머니 출범하였다. 윤 위원장은 “기술 혁명과 사회 진화의 간극을 메우도록 돕는 것이 4차위의 역할”이라며, 4차위는 AI 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규제 혁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청와대 디지털혁신비서관과 과기부 등 정부 기관과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원래 ‘4차 산업혁명’ 또는 ‘디지털 전환’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년째 지속되는 세계 대침체 국면을 극복하기 위해, 자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산업정책 차원에서 강조된 신조어이다. 주요 국가들은 ‘중국제조 2020’, ‘독일 인더스트리 4.0’, ‘미국 첨단제조파트너십 2.0’, ‘일본재흥전략 2016과 소사이어티 5.0’ 등의 경제정책을 수립하고 기술혁신으로 경제회복을 도모하고 있다.

 

한국도 2017년 10월 대통령직속으로 4차산업혁명위원회(1기)를 야심차게 출범시켰으나, 이후 역할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시민사회와 노동단체에서 제기하는 문제점은, 먼저 위원회 구성에서 산업·기술 연구자와 기업출신 전문가, 정부 관료 등이 대부분이고 사회안전망과 노동 문제를 다룰 위원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주요 의제도 기술혁신이나 규제완화(경영계 숙원 과제) 등에 치우쳐 실제 기술변화로 손해를 입는 이해관계자들을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4차산업혁명위원회 2기는 작년 10월 대정부 권고안에서 “주 52시간제의 일률적 적용이 인재 성장의 걸림돌이 되거나 기업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제기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유일한 노동 출신 위원인 황선자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부원장은 소수 의견으로 인재와 전통적 노동자는 본질적 차이가 없고,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노동시간 단축이 요구되며, 주 52시간 상한제도 지키지 못하는 기업은 국민의 일자리 불안을 없앨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실제 4차산업위 일자리작업반은 △기존·신산업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 지원 △일자리 변화에 발맞춘 기업과 노동자 적응 지원 △일자리 감소 업종과 플랫폼 노동과 같이 취약한 노동 보호 방안을 주로 논했지만 권고안에는 부각되지 않았다.

 

4차산업혁명위원회 1기, 2기에 이어, 2020년부터 3기가 다시 시작되는데 의제 보완이나 구성원 성격의 변화도 없이(민간위원 18명 중 노동출신은 1명), 노동을 배제한 채 조용히 출범하였다.

 

2. 기술과 사업모델의 변화

 

한국에서 기술과 사업모델의 변화는 노동진영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래자동차’, ‘무인항해가 가능한 스마트선박’, ‘발전소의 이상 유무를 실시간 점검하는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변화가 새로운 사업모델을 통해서 가속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촉진시키는 것은 페이스 북과 텔레그램 등 실시간으로 전 세계 수억 명의 인구를 연결시키는 초연결 플랫폼이다. 이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이용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파악하고 데이터를 축적하여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한다. 과거와 결정적인 차이는 첨단화된 모바일, 앱, 무선통신 등을 통한 엄청나게 빠른 속도이다.

 

기술과 사업모델의 변화가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사무관리, 연구, 정보통신 부문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나고 생산, 판매, AS, 단순작업 부문에서는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제조업, 유통업, 금융업, 건설 부문에서는 지속적으로 일자리가 감소되고 있고, 반면 정보통신, 보건·사회복지, 전문 과학기술 부문에서는 일자리가 늘고 있다.

 

제조업은 자동화가 많이 진전되어 작업자 수가 현격히 줄었으며 전기자동차, 자율주행차 등과 관련해서 작업 공수도 축소되고 있다. 많은 기업에서 정규직 신규채용이 사라졌고 배이비붐 정년퇴직이 많아 인원이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제조업 내에 서비스 업무가 융합되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생산설비와 통신·사물인터넷이 결합되고, 카셰어링과 렌탈경제 등 소유보다 공유(렌탈)를 추구하는 새로운 사업모델이 확산되어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유통·물류 산업은 기술변화가 가장 빠른 부문이다. 온라인쇼핑 거래액(여행, 교통서비스 제외한 통계)이 2019년 전체 소매판매액의 21.4%(473조원)를 차지하면서, 택배와 퀵 배달 물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백화점과 마트 등 오프라인 매장은 대거 축소, 구조조정 되고 있고, 팽창하는 물류시장을 장악하고자 유통업에서 물류를 직접 관리하여 수익성 개선에 나서고 있다. 이에 CJ대한통운 등 택배사 뿐만 아니라 쿠팡, 위메프, 이마트, 롯데마트, 배달의 민족, 메쉬코리아 등 이종산업과 스타트업들이 물류에 뛰어들어 유통과 물류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새로운 사업모델은 당일배송, 새벽배송, 원하는 시간배송 등과 함께 플랫폼노동으로 확산되고 있고, 아마존과 같은 풀필먼트센터(주문과 함께, 입고부터 출고까지 자동화시스템을 갖춘 물류창고) 구축으로 무한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다.

 

3. 기술변화에 따른 노동 약자의 위기

 

기술혁신으로 생산력이 높아지면 10명이 일하던 것을 3~4명이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디젤엔진 굴착기가 개발되자, 인간이 수작업으로 암반을 뚫으면서 발생했던 대형사고와 장시간 노동을 해소할 수 있었다. 최근에는 전기 굴착기가 개발되어 소음, 매연, 유지·운영비 등이 감소하였다. 이처럼 기술개발의 성과가 제대로 분배된다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고 충분한 휴식과 자기계발에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를 억압하는 사회에서는 기술이 개발되어도 그 성과를 소수가 독점하므로, 노동자를 위한 법과 제도는 당사자들의 지속적인 투쟁과 사회민주화를 동반하면서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제도화 될 수 있었다.

 

단기적으로는 기술개발이 오히려 노동자에게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경북에 있는 중견기업인 00주식회사는 신형 프레스기계 도입으로 자동화율을 높여서, 혁신기업으로 선정되고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공장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과거 숙련 작업자들이 주야로 프레스를 가동했는데, 자동화 이후 공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이전에는 야간작업으로 노동강도는 높았지만, 초과노동 및 야간수당을 받아 임금이 주변 사업장보다 높았다. 그러나 신형기계 도입이후 이들은 작동방법을 새로 배우기도 어려웠고, 무엇보다도 야간 및 초과노동 수당이 줄어들어 임금의 30% 정도가 삭감되었다. 결국 숙련 작업자들은 퇴사하여 수작업이 필요한 다른 공장으로 이전하였다. 회사도 나이든 노동자를 재교육시키는 비용보다는 자격증을 가진 젊은 노동자를 채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였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기술혁신의 성과는 사업주가 독점하고, 노동자들의 역할과 처우(노동시간단축과 임금보전, 신기술에 대한 재교육·재훈련 등)는 관심밖에 있으며 노조가 있는 사업장 정도가 손실 부분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경향신문 연재기사 ‘무인화의 허구’를 보면, “기술변화가 기회인가 불안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연령이 높을수록(40대 이상)’, ‘비정규직일수록’, ‘생산·운송·건설·음식서비스 직군일수록’ 불안감이 크다고 응답하였다. 반면 ‘연령이 낮을수록(30대 이하)’, ‘정규직일수록’ 기회 요소가 높다고 응답하였다.

 

4. 기술변화와 노동의 대응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 두 가지는 명확해 졌다. 첫째 기술과 사업모델의 변화가 많은 영역에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둘째 이러한 변화를 자본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면서 노동은 배제되어 있는데, 정부와 언론은 친기업 및 기술편향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다. ILO와 유럽 노동조합들은 디지털화에 따른 ‘공정한 전환’을 정부와 자본에 요구하여 단체협약 개선과 정부정책 제고 등으로 대응하고 있다. 우리도 ‘퇴근 후 연락받지 않을 권리’, ‘정보주권과 사생활 보호’, ‘고용안정과 재교육·재훈련 보장’, ‘노동시간단축과 임금보전’ 등을 기술변화에 따른 중요한 의제로 선정하여 ‘공정한 전환’을 위한 정책개발, 교섭, 투쟁을 보다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