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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20년, 참 한결같다

공계진 /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
금속노조연구원   |  

2000년 금속산업연맹 정책실장으로 산별노조건설 사업을 했던 기억이 새롭다. 당시만해도 겪어본 것이 아니라서 단일노조로서의 금속산별노조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고, 그래서 엄청 버벅댔지만 2001년 2월 8일 전국금속노동조합의 출범에 대한 자긍심만은 대단했었다. 그리고 잠시 금속노조를 떠나있다가 2008년 4월, 금속노조정책연구원(현 노동연구원) 원장으로서 금속노조에 복귀했었다. 복귀의 주된 목적은 금속산별노조의 발전전망을 만드는 것이었다.

 

2008년 복귀 후 필자는 산별발전전망시안이란 문건을 작성했었다. 이것은 필자가 정리하고 싶은 산별발전전망의 초안이었다. 그 문건을 다시 보니 금속노조를 떠나 지역과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활동한 경험을 바탕으로 참으로 많은 것을 제기하고 싶었던지 이것저것 많은 것을 터치하고 있었다. 완성도가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이것저것 문제를 던지는 식이다보니 그것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전소장(현 한국고용노동교육원 원장)이 ‘정리가 되지 않는, 헷갈리게 하는 정리(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음)’라며 문제제기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게 난다. 지금 살펴보니 당시로서는 충분히 그랬을 것 같다. 중앙교섭에 대한 문제제기와 중앙교육원의 설립, 산별고용안정체계 수립, 연공서열을 부정하는 듯한 임금체계의 도입, 지역 및 사회적 의제의 제기와 지역개입력 강화, 계급성의 강화, 사회운동적 노동운동으로의 마인드 전환 등등 참으로 많은 것을 제기했다. 그중 중앙교육원 설립은 연수원 건립으로 실현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이외의 많은 것들은 실현된 것이 거의 없어서 필자의 눈에 보이는 금속노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금속노조 위원장 임기는 2년이기 때문에 2008년 이후 6번의 선거가 있었고, 연임에 성공한 김호규 현위원장 포함 5명의 위원장들이 오고갔지만 변한 게 없다. 참 한결같은 조직이다.

 

한결같다는 것을 일관성이 있다고 해석하면 좋은 의미로 사용할 수 있지만(보통은 그렇다) 그것을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면 참 안좋은 표현이다. 필자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했다.

 

2020년 12월 18일 노동연구원 마지막 자문회의를 했다. 그 자리에서 안재원 원장을 비롯한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들이 2020년 했던 사업과 2021년 해야할 사업에 대해 들었다. 3명의 연구위원들이 참으로 많은 일을 했고, 또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필자가 원장으로 있을 때는 설립취지에 맞게 중장기 전망 수립과 관련된 중장기 정책생산에 주력했었는데, 이제는 정책실에서 해야 할 단기정책생산과 그것의 집행도 책임져야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참으로 많은 일을 할 수밖에.

 

많은 일의 수행은 단기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일이 아니다.

 

노동연구원의 설립목적은 중장기 발전전망을 내놓고, 그것을 근거로 금속노조의 중장기발전을 도모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연구원에 단기정책생산을 요구해서는 안된다. 노동연구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은, 현재 금속노조가 직면한 현실을 평가진단하고, 적어도 5~10년 뒤의 시대상황을 예측하여, 그것을 헤쳐나갈 금속노조 장기전망의 제출이다. 즉, 격변의 시기에 맞게 노동연구원은 아래와 같은 내용을 생산해야 한다.

 

노조가 장기간 임단협 중심으로 운영되며 발생한 경제주의, 실리주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7~80년대 산업현황과는 확연히 달라지는 산업현황(소위 4차 산업혁명, 코로나19후 강화되는 플랫폼자본)에 대해 금속노조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지역중심/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마인드 도입과 그에 걸맞는 노조 조직화 방향, 어떻게 50만 조합원 시대를 열 것인가?, 청년노동자의 유입과 늙은노동자의 퇴직시대를 맞이하여 금속노조의 조직운영 마인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조직내외의 우분투(I am because you are)를 어떻게 실현하여 노동자단결과 계급계층별 연대를 실현할 것인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어떻게 재추진하여 노동해방으로 다시 나아갈 것인가? 등등.

 

금속노조가 ‘하루벌어 하루사는 식’의 운영을 지속하면 금속노조는 앞으로 수년내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장기간 지속된 임단협중심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면 금속노조 실리화는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이 될 수 있고, 여기에 투쟁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노동자들이 결합되면 아마도 노동조합은 전통적 의미의 민주노조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변화된 산업현황에 대응하지 못한다면 그 산업현황에서 고용된 노동자들을 더 이상 금속노조의 조합원으로 조직하기 어려울 것이며, 대공장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의 조직화를 방치하면 50만 조합원시대는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청년노동자들은 우대하면서 늙은 노동자들을 방치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계급적 단결을 기초로 발전해야 하는 노동조합은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나아가 늙은 노동자들의 퇴직 후 삶에 대한 전망 수립과 대책수립을 방치한다면 개인적으로 살길 찾아가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의 우경화와 노조이탈, 퇴직 후 진보영역에서의 이탈을 막을 수 없게 되어 노조 뿐만 아니라 진보진영 전체의 마이너스로 작용, 결국 노동해방을 어렵게 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다.

 

그래서 중장기 전망 수립 작업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절실하다.

    

그래서 필자는 다시한번 노동연구원의 기능 회복을 촉구하며, 그것을 위해 2021년 사업으로 ‘금속노조 20년 진단과 10년의 전망 수립’을 넣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제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