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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판매노동자도 ‘노동의 유토피아’에서 노동자로 살고 싶다

김영수/상지대학교
금속노조연구원   |  

근로계약을 맺고 노동을 하는데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않은 채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있다. 일반 대리점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는 노동자들이다. 2022년 10월 17일, 20년 이상 대우자동차 직영 대리점, 기아자동차 대리점, 현대자동차 대리점, 쌍용자동차 대리점에서 판매노동을 했다가, 지금은 택시운전을 하는 한 노동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 노동자의 말과 한숨이 폐부를 찌른다. ‘근로계약서를 반드시 써야 하지만, 여러 여건상 쓰지 않고 일하더라도, 아니 근로계약서를 세세하게 쓰지 않고 대충 썼더라도, 일한 대가를 판매수당이 아니라 정식 임금으로 받으면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 판매 수당이 임금이 아니라면, 차를 판매하는 일을 하는데도 노동자가 아니라면, 누가 노동자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면서 한숨을 내쉬고 한 말이다. 이 노동자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생애사를 쏟아냈다. 말과 표정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회한들을 치유하는 듯, 판매노동자들이 5중의 갑질 구조를 이겨내면서 일해야 한다는 사실을 수없이 강조하였다. 


5중의 갑질이라니? 인터뷰를 마치고 난 이후, 자동차 판매 대리점 노동자들을 에워싸고 있는 갑질 구조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갑질을 이겨내느라 마음이 시커멓게 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감정 노동자들의 아픔과 고통이 밀려왔다. ①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 법의 갑질 ②대리점 사장과 맺은 계약서를 앞세우는 본사의 갑질 ③판매실적만 부르짖는 대리점 사장의 갑질 ④과열 판매경쟁의 늪에 빠져든 판매노동자 사이에 벌어지는 갑질 ⑤자동차 구매계약을 악용하는 소비자 갑질. 이런 갑질의 틈바구니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지면의 한계 때문에, 5중의 갑질 사례를 세세하게 쓸 수 없어서 안타깝지만, 자동차 판매를 위해 참고 또 참으면서 비위를 맞추어 가며 자동차를 팔아도, 자동차 회사가 내린 업무지침(판매절차, 판매조건, 채권확보, 연체관리 등)에 따라 자동차를 판매해도, 일반 대리점 노동자들은 기본급이나 퇴직금이 없는 ‘빵원 위촉 판매원’에 불과하다. 일반 대리점 판매노동자들은 자동차가 팔리고 난 이후, 본사에서 대리점으로 내려 보내는 판매 수익금 중에서 대리점 사장에게 다시 30%나 40%를 떼어낸 나머지를 판매수당으로 받는다.


그런데도 판매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란다. 근로기준법 제2조와 노동조합법 제2조는 노동자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이고, 노동조합법에서는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이다. 


일반 대리점의 판매노동자들을 이 두 가지 법에 적용시켜 보자. 판매노동자들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근로를 제공하여 ‘임금・급료나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관건은 판매노동자들의 판매 수당을 ‘임금’으로 보느냐이다. 판매노동자들은 그 명목이 무엇이든 판매수당을 임금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일반 대리점에 소속된 경우, 기본급이나 퇴직금이 없는 상태에서 일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당이야말로, 임금・급료로 명명되지 않는 임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일반 대리점 판매노동자가 자동차 본사나 대리점 사장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청구소송과 퇴직금 반환청구소송을 하였는데, 대법원은 판매노동자의 상고를 2022년 5월 26일에 최종적으로 기각하였다. 


판매노동자들의 판매수당을 임금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유가 법원의 판결문에 들어 있어서, 약간 긴 내용이지만,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이 판결문에서 원고는 퇴직금 반환투쟁을 하는 판매노동자이고, 피고는 자동차판매 일반대리점 사장이었다.


“원고가 어느 정도 종속적인 관계에서 피고에게 노무를 제공하였던 사정은 인정된다. <중략> 원고와 피고의 관계는 사실상 피고가 시설 등을 제공하고, 원고는 노무를 제공하는 형태의 동업관계와 유사해 보이고, 원고는 판매실적에 따라 창출된 이윤에 대하여 상한 또는 하한이 없는 판매수당을 지급받아 왔으므로, 원고는 일정 정도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하였다고 봄이 상당하다. 취업규칙이나 복무규칙은 존재하지 아니하고, 원고에게는 피고의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등의 사회보장제도가 적용되지 않았으며, 원고의 보수에 대하여는 근로소득세가 원천 징수되지도 않았다.”(2019가단63501 임금, 원고 000, 피고 000, 2020년 12월 9일 선고)


일반 대리점 판매노동자들도 근로계약서를 쓴다. 계약서를 쓰는 순간, 노동자의 지위는 확보된다. 근로기준법 제2조가 정답이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의 의미를 규정하고 있다.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을 말한다.’ 이 조항은 근로계약의 체결 행위만으로도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고, 판매수당이던 성과 인세티브든, 근로를 제공한 대가로 지불되는 임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법적 근거이다. 판매수당을 임금으로 보지 않으려는 다양한 시각과 가치들은 판매노동자들을 판매경쟁의 늪으로 빠져들게 하면서 노동의 대가인 임금을 변형시킨 자동차 회사와 일반 대리점의 꼼수를 인정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되고,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내세우는 세상, 이런 세상이야말로 모든 사람의 노동을 귀하게 여기고 진짜로 존중하며, 서로 차이를 바라보고 배려하는 노동의 유토피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