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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략 결혼에는 사랑이 없고, 정략만 있습니다.

공계진/시화노동정책연구소
금속노조연구원   |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이 결의해서 만든 진보정당입니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조직적으로 민주노동당 당원가입을 추진했었지요. 조합원들에게는 자발적 입당을 권유했지만 간부급들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했습니다.

 

저는 금속노조가 출범하기 전인 금속산업연맹 재직시 가입했습니다. 당시 기획국장이었기 때문에 의무가입대상이었고, 그래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저는 민주노동당에 대해 그리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던 제가 2004년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의 역할을 맡고 민주노동당 중앙당에서 근무하게 됩니다. 제가 이 보직을 수락했다는 것은 초기에 가졌던 민주노동당에 대한 소극성이 적극성으로 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비록 능력이 부족했지만 민주노동당 당직을 맡은 이후 사명감을 갖고, 노동자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제가 부총장으로 일할 때에도 민주노동당에는 정파가 있었습니다. 금속노조에 현장조직과 맥을 같이하는 정파들은 늘 대립적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부총장이란 직을 맡은 저는 ‘이 정파들이 선의의 경쟁을 해서 민주노동당을 <세상을 바꾸는 정당>으로 바꾸는데 일조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제가 속한 정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파들이 대립보다는 연합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속하지 않은 정파의 구성원들로부터 ‘모멸적 대우’를 받기도 했지만 그것에 대해 섭섭해하기 보다는 그들과 함께하려고 했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에 제가 속한 정파의 사람들은 못마땅해했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대립은 발전적으로 작용하지 못하고 급기야 분열의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008년 2월 민주노동당은 쪼개집니다. 일부 정파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든 것인데요, 당시 저는 민주노동당에 남았습니다. 탈당의 근거는 종북주의와 패권주의 두 개였는데, 저의 입장은 ‘패권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당하지만 종북을 근거로 탈당하는 것은 아니다’였기에 민주노동당에 남아 비대위 사무처장 역할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진보정당의 분열의 상처는 당시에도 컸습니다. 당장 2008년 4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의석은 반토막이 났습니다.

 

2008년 총선의 실무책임자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저는 노동연구원장(당시 명칭은 정책연구원)으로 금속노조에 복귀했습니다. 다시 노조로 돌아와 노동조합 일을 하게 되었지만 활동가로서 진보정당의 문제는 늘 제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2011년, 헤어졌던 당들과 새로운 당이 결합하여 통합진보당을 결성하게 됩니다. 저는 진보정당의 통합에 대해서는 찬성했지만 통합진보당 결성과정의 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했습니다.

 

제가 반대한 과정은 ‘당시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과 선통합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국민참여당과의 선통합에 반대했던 이유는 그 당은 진보의 기준에서 보면 진보정당으로 말하기에는 결이 다른 면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은 진정한 통합이 아니라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진보신당과의 선통합 후 국참당과의 통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만, 결국 민주노동당, 국참당, 진보신당이 합쳐져서 통합진보당을 탄생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통합진보당은 그간의 분열을 반성하고, 우리가 만들 미래 세상에 대한 상과 과정에 대해 일치시키며, 그것을 위해 재결합한 진짜 통합 정당’이라기 보다는 정략결혼한 당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의 우려가 현실화되는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통합의 시너지는 2012년 4월에 치러진 선거에서 곧바로 나타나 통합진보당은 13석의 의석을 가진 당이 되었지만 이념과 철학에 기반하기보다는 이해관계에 기반하여 탄생한 정당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선거 후 곧바로 내부투쟁이 일어납니다. 저는 선거후 일산 킨텍스에서 있었던 폭력과 아수라장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는데요, 그 후 통합진보당은 다시 최종 분열하게 되고, 그 후과로 진보정당들을 나락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2023년 5월이 다가옵니다. 4월24일에는 정치방침에 대한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논의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제가 민주노동당에서 시작한 진보정당의 분열에 대해 길게 언급한 것은 이전의 잘못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민주노총 내에서 진보정당들의 연합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통합주의자인 저는 민주노총에서 진보정당들의 연합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일단 환영합니다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거 진보정당들의 분열 특히 통합진보당의 결성과 분당을 복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것에 우려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진짜 결혼이 아닌 정략결혼을 하려고 하는 것인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또 다른 정략결혼과 또 다른 파산은 이후 진보정당들의 진짜 결혼을 매우 어렵게 할 것이고, 그 결과 진보정당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요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보정당들의 연합은 돈이 없어 방을 함께 쓰는 ‘어쩔 수 없는 동거’가 아니라 진짜 재혼하기 위한 ‘미래결혼의 사전단계로서의 동거’이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행되거나 논의과정에서 함께 복기되어야 할 것들이 있어야 합니다.

 

우선해야 할 것은 현재의 진보정당 분열에 책임 있는 세력들은 과거를 복기하고 그것부터 반성해야 합니다. 분열의 책임자들이 반성하기보다는 그 책임을 타 정당 또는 정파에게 전가하는 모습을 지속한다면 ‘진정한 동거와 결혼’은 어렵습니다. 설령 성사된다고 해도 통합진보당의 탄생과 파산을 답습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음으로 할 것은 여러 진보정당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진보정당으로서 ‘바꿀 세상의 상과 바꾸기 과정’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것 없이, 오직 다가올 총선에서 비례의원 당선을 목적으로 ‘동거와 결혼’을 추진한다면 이 역시 통합진보당의 악몽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는 수준은 우려스럽습니다. 세상바꾸기에 대한 논의는 뒤로 밀린 채 오직 2024년 비례의원 당선, 정확히는 당선권에 들어갈 후보자의 배당에 초점이 가 있고, 방법도 정파 간 깊이 있는 논의보다는 자파 대의원 동원과 표결이라는 수와 힘에 의존(패권주의 방식)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게는 민주노동당의 분당의 상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이 있습니다. 제가 민주노동당에서 갖고 나와 보관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요, 차마 공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공개하면 이전의 상처를 더 덧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입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우리 진보정당 역사에서 입었던 상처의 골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진정한 연합, 통합은 어려우니 다시 우격다짐으로 갈 생각 말고 길게 보고, 서로를 존중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자는 것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