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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원과 대의원의 '맞대기'

김영수 /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자문위원
금속노조연구원   |  

‘맞대기’라는 말에 놀라지 않았으면 좋겠다. AI는 이 말을 도박판의 은어이자 용접 과정에서 쓰는 말이라고 한다. 이 단어를 대의원대회에 적용하는 것은 아마 필자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필자의 ‘맞대기’는 새로운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다. 맞서기의 의미가 아니다. 스킨십이라는 단어를 쓰기가 거북해서 ‘대의원들 서로가 살을 비비듯, 마음과 생각과 가치를 서로 부비다’는 뜻으로 ‘맞대기’를 쓴다. 서로 대보면서 자신에게 앎과 경험의 지층을 새롭게 쌓거나 재구성한다는 차원의 의미다.

 

2026년 3월 3일 금속노조 제61차 정기대의원대회(재적 대의원 참석률 68.36%) 이후, 임시대의원대회가 4월 27일 개최된다. 약 50일 만이다. 금속노조 임원과 간부들은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대의원의 참석을 조직하고 또 조직한다. 대의원대회에서는 재적 대의원의 과반수가 대회장을 떠나지 않도록 애쓰고 또 애쓴다. 재적 대의원 844명은 며칠 후 다시 전국 방방곡곡에서 단양수련원(연수원)으로 달려와 서로가 금속노조의 허리임을 확인할 것이다.

 

지난 3월 정기대의원대회는 14시 13분에 개회해서 16시 51분에 폐회했다. 2시간 38분이 걸렸다. 그런데 대의원들은 1,470여 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자료, 414쪽이나 되는 회의자료를 통과시켰다. 13기 2년 차 사업평가(수정안 반영) 및 결산 보고 승인 건, 14기 1년 차 사업계획(안) 승인 건, 14기 1년 차 사업예산(안) 승인 건 등의 안건이 만장일치로 처리하였다. 아주 물론 대의원들은 사전에 자료를 꼼꼼하게 숙지하고 검토하면서, 자신을 대의원으로 선출한 조합원과 토론하고 소통했을 것이다. 금속노조 규약 제26조(대의원대회의 기능)에 따르면, 대의원대회는 노조의 임원선출이나 조합의 해산 등을 제외한 주요 사업이나 활동과 관련해서는 총회를 갈음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규약은 규약일 뿐이고, 조합원이나 대의원들이 규약에 정합하는 활동을 일상에서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크다. 노동조합의 자치적인 활력과 조직력이 현장에서 쇠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대의원은 지역과 현장의 조합원을 대표하고 조직의 C자형 허리여야 한다는 필자의 고리타분함이라고 해도 좋다. AI와 주식이 대세인 시대에 미래를 짚어도 모자랄 판에 웬 조직 타령이냐, 노조 내부에서 가장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을 건드리냐는 지적에 맞닥뜨릴 수 있다. 그런데 어떤 AI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사람과 사람의 ‘맞대기’다. 맞다. 그래서 질문한다. 노동조합의 임원이나 간부와 대의원과 조합원도 가질만한 의문이다. 노조 내외부에서 투여하는 자극제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대의원의 역할과 기능이 금속노조의 사활이 아닐까?

 

필자는 노동조합 대의원대회를 새로운 의미로 치장하려 한다. 빨리빨리 끝내고 돌아가려는 대의원대회가 아니었으면 하는 욕망의 자극이다. 대의원대회란 ‘조합원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표현하고 채워내며 다짐하는 회의광장이다.’ 민주노조운동 내부에도 관성의 힘이 세게 작동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의원대회는 노동조합의 핵심 사안을 결정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맞는 말이다. 대의원대회는 노조의 아름다운 허리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하지만 뭔가가 허전하다. 그래서 필자는 대의원대회를 관성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하였다.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부여한 대의원대회의 의미를 네 가지의 측면으로 세분해서 보자.

 

먼저 ‘표현하기’다. 표현의 방식은 다양할 수 있다. 표정, 발언, 행동 등이지만, 대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표현의 다른 모습이다. 대의원대회의 주요 의제들은 노조의 핵심적 활동에 해당한다. 제62차 임시대의원대회에서 다루는 의제로 확인할 수 있다. 조합비 회계공시제 관련 방침, 2026년 투쟁방침(안) 승인, 쟁의적립금 사용(안) 승인 등은 조합원의 이해와 직결되는 안건인 만큼, 대의원의 ‘표현하기’는 다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합원을 표현하고 자신의 대표성을 표현해야 한다. 표현 이후에 생기는 것이 있어서다. 자신의 공백과 여백이다. 새로운 것이 들어갈 자리다. 사유의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다. 관계를 다시 설정할 여유의 공간이기도 하다. 공간이 빈약한 사람이 종종 답답하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으로는 ‘채워내기’다. 주요한 안건과 의제의 내용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 대의원 스스로 안건의 의제의 내용을 자기화해야 한다.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 때, 비로소 조직의 아름다운 허리가 더 튼튼해진다. 물론 노조의 임원이나 간부들의 능력을 인정하는 태도는 조직 활동의 기본이다. 그렇지만 그 ‘인정’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대의원대회의 주요 안건들을 제대로 인지한 상태에서 ‘인정’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인정’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후자의 경우는 방관이자 회피에 해당할 수 있다. 노조의 임원이나 간부들이 잘 알아서 했겠지. 아니면 잘 알아서 할 거야. 조직 관료화의 시작점이다. 임원이나 간부의 문제를 넘어서, 허리가 아파서 곧게 서거나 씩씩하게 걷지 못하는 상황과 연결된다.

 

세 번째로는 ‘다짐하기’다. 대의원대회는 대부분 폐회 직전에 다양한 결의문을 채택한다. 거의 관행이다. 결의의 시간만큼은 비장한 분위기가 대회장을 휘감는다. 대의원들은 의지를 태운다. 열기도 타오른다. 필자도 대의원대회를 여러 번 참관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었다. 대의원들은 결의문 그 자체를 결의하는 걸까? 아니면 결의문에 담겨 있는 다양한 내용과 과제도 결의하는 걸까? 대의원 각자에게 확인하기 어렵다. ‘표현하기’와 ‘채워내기’의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회의장에서만 비장미가 넘쳐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의원 혼자서는 비장한 마음으로 다짐한다. 문제는 조합원과 함께 비장함을 다지는 일이다.

 

네 번째로는 ‘회의광장’이다. 대의원대회는 주로 많은 사람이 한 장소에 군집한 상태에서 회의를 진행한다. 주로 위원장이 회의의 좌장을 맡는다. 회의는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정해진 회순에 따라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물론 의제와 내용의 쟁점이 크게 이슈화되는 사안이 있는 경우에 현장 발의가 있곤 한다. 토론과 주장의 광장이 열린다. 찬반이라는 편가름의 활력도 생긴다. 만장일치 방식의 의결이 놓칠 수 있는 지점이다. 진짜 광장에서 생기는 만장일치가 가장 멋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만히 앉았다가 현장으로 급하게 돌아가는 무덤덤한 기분에서 벗어나는 맛이다. 어떤 광장이든 소란스럽다. 광장을 채우는 사람들의 언행도 각양각색이다. 여기저기가 다 보고 듣고 채울 것들이다.

 

대의원대회를 치장한 목적은 간단하다. 대의원과 대의원의 ‘맞대기’를 늘리자는 것이다. 대의원들의 시간을 소중하게 대하자! 국제사례를 찾아보았다. 남아공과 브라질의 금속노조 대의원대회다. 양 국가의 금속노조는 한 번의 대의원대회를 치르더라도 3~5일 동안 지속한다. 보통 4일 동안 열린다. 예전에 남아공 노동조합 대의원대회에 참관했었다. 대회가 마치 투쟁을 준비하는 축제와 같았다. 첫째 날에 개회와 보고가 이루어진다. 보고도 지역이나 사업장이나 정치적인 의제까지 다양했다. 둘째 날에는 서로 교차하는 방식으로 의제별·주제별·지역별 토론 모임을 한다. 처음 만나는 대의원에게 자기를 표현하고 채우는 시간이다. 셋째 날에는 함께 모여서 종합토론한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의제별 결의, 선언문 채택, 향후 행동계획을 확정한다.

 

남아공과 브라질의 금속노조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 기간 내내 자연스럽게 ‘맞대기’를 축적한다. 양 국가의 대의원들은 대의원대회를 거치면서 충분하게 표현하고 채워내면서 정말 굳세게 다짐한다. 속이 꽉 찬 만두가 되어 현장으로 돌아간다. 연대의 끈과 그물망도 가져간다. 대의원대회가 끝날 때는 대의원 사이에 처음 만났던 낯설음과 어색함과 머쓱함이 사라지고, 촘촘한 관계의 망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노동조합의 주인은 조합원이다. 대의원은 조직의 허리다. 주인도 주인다워야 하고, 대의원도 대의원답게 조합원을 대표해야 한다. 주인이 주인답게 살기 위해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 있다. 말이 아니다. 허리가 튼튼할 때다. 사람의 신체를 생각하자. 허리가 튼튼하면 상체와 하체도 건강하다. 허리는 버팀목이다. 대의제의 한계를 이겨낼 힘이 필요하다. 그 시작과 끝이 바로 ‘대의원의 맞대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