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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급은 얻었지만 노동의 미래는 교섭하지 못했다-기업이익 배분 교섭과 AI 시대 산별노조의 과제

이명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금속노조연구원   |  

 성과급은 얻었지만 노동의 미래는 교섭하지 못했다-기업이익 배분 교섭과 AI 시대 산별노조의 과제


성과급 몇 퍼센트가 교섭의 중심이 됐다

 

대기업 임금교섭의 문법이 바뀌는 걸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서는 회사가 거둔 영업이익 가운데 일정 비율을 노동자에게 배분하라는 요구가 전면에 등장했다. SK하이닉스에서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성과급 재원으로 삼는 방식이 자리 잡은 뒤 삼성전자 노조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이를 제도화하라고 요구했다. 비슷한 요구는 완성차와 IT기업으로도 번지고 있다. 성과급이 연간 보상의 큰 몫을 차지하게 된 현실에서 그 산정 기준을 경영진의 재량에 맡겨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성과급을 회사가 재량껏 베푸는 포상이 아니라 노동자의 집단적 권리로 바꾸려는 시도라고 평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의 단체교섭은 무엇인가? 기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조합원에게 가져오느냐가 단체교섭의 전부인가? 단체교섭의 성과를, 조합원의 현금보상이 얼마나 늘었는지만으로 평가해도 되는가? 삼성전자의 사례는 기존 노동조합운동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고 있다. 


가결됐지만 갈라졌다

 

사실관계를 짚어보자. 삼성전자 교섭 결말은 숫자만 보면 ‘성공’이다. 투표율 95.5%에 찬성 73.7%. 그런데 노조별 표결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조합원의 약 80%가 반도체(DS) 부문인 초기업노조는 80.6%가 찬성했다. 스마트폰과 가전을 만드는 DX 부문 직원이 주축인 전삼노는 78.9%가 반대했다.

이유는 합의 내용에 있다. 이번에 도입된 ‘특별경영성과급’은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 재원 가운데 ‘공통 몫’은 40%에 그치고 60%는 사업부별 실적에 따라 배분하며 전액 자사주로 지급한다. 반도체가 초호황인 지금 이 규칙을 적용하면 언론 추산으로 메모리사업부 직원은 기존 성과급까지 합쳐 최대 6억원에 이르는 반면 DX 부문은 600만원 수준에 머문다. 영업이익 전망에 따라 액수는 달라지지만 격차가 100배 가까이 벌어진다는 계산은 어느 추산에서나 같다. “600만원이면 누굴 거지로 아느냐”는 격앙된 반응이 언론에 오르내릴 만큼 DX 노동자의 박탈감은 컸다.

 

회사와 노동의 대립으로 시작한 교섭이 노동자 내부의 성과 귀속 경쟁으로 끝난 셈이다. 성과급 교섭은 노동자를 결집시켰지만 성과급의 배분은 노동자를 다시 사업부별로 갈라놓았다.


사업부가 노동의 경계가 됐다

 

이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과급의 크기가 아니다. 회사가 설정한 사업부별 실적과 회계의 경계가 그대로 노동자의 이해관계와 노조 조직의 경계로 옮겨왔다는 사실이다.

 

‘사업부별 실적에 따른 60%’라는 배분 규칙이 합의문에 들어가는 순간 어느 사업부가 얼마를 벌었느냐가 노동자의 몫을 가르는 ‘공식기준’이 된다. 성과급이 사업부별로 달라지면 노동자의 이해관계도 DS와 DX, 메모리와 비메모리, 고수익 부문과 저수익 부문으로 쪼개진다. 실제로 표결은 그 경계선을 따라 갈렸고 노조 조직의 판도까지 사업부의 경계를 따라 재편되고 있다.

 

기업별노조의 교섭은 한계가 뚜렷해도 적어도 한 회사 안에서는 임금과 협약을 부서와 직군을 가로질러 비교적 일괄 적용해 왔다. 그런데 이번 합의는 한 기업 안에서조차 노동자 공동의 경계를 더 작게 쪼갰다. 기업의 울타리를 넘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기업 내부의 공동성마저 사업부라는 더 작은 울타리로 나눈 것이다. 노동조합이 이 논리를 받아들이면 노조의 교섭은 경영의 분할통치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 내부에 재현하는 셈이된다.

 

그런데 이것을 오로지 삼성전자 노동자의 탐욕으로 설명하는 것도 성급한 판단이다. 그동안 삼성은 사업부별 실적관리로 노동자에게 각자 수익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해왔다. 여기에 기업별 노사관계와 복수노조 사이의 대표성 경쟁이 결합했다. 어느 한 주체의 잘못이라기보다 경영전략과 노조전략, 교섭제도가 함께 만든 실패에 가깝다.

 

차등성과급을 거부했던 노동운동의 기억

 

여기서 되돌아볼 노동운동의 경험이 있다. 정부가 교원과 공무원에게 차등성과급제를 밀어붙였을 때 노동조합은 더 높은 등급과 더 많은 성과급을 얻으려고 경쟁하지 않았다. 전교조는 2009년부터 차등 지급된 성과급을 모아 균등하게 나누는 투쟁에 나섰고 공무원노조는 성과상여금을 반납하거나 재분배하는 투쟁을 벌였다. 당시 노동조합이 문제 삼은 것은 평가기준의 부정확성만이 아니었다. 학교와 행정의 성과는 ‘개인 경쟁’이 아니라 ‘협업의 결과’인데 이를 개인별·등급별 보상으로 쪼개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노동자가 서로를 경쟁자로 보게 된다는 것이었다. 성과급 반환투쟁은 임금을 포기한 도덕운동이 아니었다. 사용자와 정부가 정한 성과의 경계를 거부하고 노동자 공동의 이해를 다시 세우려는 집단적 교섭행위였다.

 

이 투쟁은 연대의 결실로 이어졌다. 2016년 정부가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강행하자 병원과 철도, 금융을 비롯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1년 넘게 저지 투쟁을 벌였고, 제도가 폐기된 뒤 지급됐던 인센티브 성과급 약 1,600억원을 반납해 2017년 ‘공공상생연대기금’이라는 재단을 세웠다. 성과연봉제를 받아들인 대가로 나온 돈을 자기 주머니에 넣지 않고 사회로 되돌린 것이다. 이 기금은 지금도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청년 공익활동가 지원, 창원의 노동자 작업복 세탁소, 드라마 제작 현장의 노동환경 개선 캠페인, 노동 연구와 교육 지원 같은 활동으로 연대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노조가 있는 공공기관 담장 안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자와 지역, 사회 전체를 향한 활동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성과급을 '내 몫'이 아니라 '공동의 자산'으로 되돌린 전례가 이미 존재한다. 물론 공공부문과 민간 대기업을 똑같이 취급할 수는 없다. 공공부문은 성과의 계량화가 어렵고 공공성과 협업의 성격이 강한 반면 민간기업에는 영업이익이라는 경영지표가 있다. 그러나 이 차이가 핵심 질문을 없애지는 않는다. 앞서 봤듯 반도체의 이익 역시 공동노동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조합은 언제부터 성과에 따른 차등을 거부하는 조직에서 더 많은 성과를 자기 집단의 몫으로 귀속시키는 조직으로 바뀌었는가?

 

금속노조도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질문은 삼성전자 담장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형식적으로 산별노조라는 것만으로 교섭의 내용까지 산별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산별교섭의 이름 아래에서도 실제 동력과 조합원의 관심이 완성차 대기업 등 개별 사업장의 임금·성과급·고용보장에 집중된다면 산별노조 역시 기업별 이익배분 경쟁의 문법을 벗어나기 어렵다. 완성차 기업이 높은 이익을 거뒀을 때 그 이익이 완성차 노동자의 성과급에 얼마나 반영될지만 교섭한다면 부품사와 하청노동자, 비정규직과 지역의 산업생태계는 교섭 밖에 남는다.

 

금속노조는 산별노조이고 기업의 경계를 넘는 연대와 교섭을 지향한다. 올해 중앙교섭 요구안에는 금속산업 최저임금과 초기업 교섭 활성화, 정년제도 개선과 함께 ‘AI 도입 시 노동인권·고용 보호’가 들어 있다. AI 도입을 사전에 노조에 통보하고 노사 합동으로 영향평가를 실시하며, 알고리즘과 수집정보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고 AI를 활용한 인사조치의 정당성 입증책임을 회사가 지도록 하는 내용까지 담았다. 7월 15일 총파업에 나선 것도 이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다. 이는 분명한 진전이며 한국노동운동에서 가장 앞선 시도다.

 

그러나 AI를 요구안에 넣는 것과 AI 전환을 교섭하는 것은 다르다. 피지컬 AI와 산업용 로봇, 스마트팩토리의 확산은 몇 개 직무를 대체하는 문제가 아니다. 생산공정과 작업조직, 숙련의 가치, 인력규모, 원하청 사이의 물량배분, 지역고용을 통째로 바꾸는 문제다. 사전통보와 고용보장이라는 방어선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회사가 도입을 결정한 뒤에야 노조가 등장하게 된다. 기술이 바꿀 구조 자체를 교섭하지 못하면 노조는 언제나 사후 협상자에 머문다. 지금이 적기라는 점도 중요하다. 피지컬 AI와 스마트팩토리는 아직 도입 초기다. 어떤 공정에 어떤 기술을 넣을지, 그 이익과 비용을 누가 차지할지의 규칙이 지금 만들어지고 있다. 규칙이 굳어진 뒤에 교섭에 나서면 노조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 보상의 흥정뿐이다. 삼성전자의 사업부별 배분 규칙이 일단 합의문에 들어가자 되돌리기 어려운 기준이 된 것처럼 기술 전환의 규칙도 처음 정해질 때가 가장 중요하다.

 

현실의 무게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들이 교섭 자체를 회피하는 조건에서 의제를 넓히라는 주문이 한가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교섭 의제가 개별 사업장의 임금과 성과급에 머무는 한 사용자에게는 초기업교섭에 나올 이유가 더욱 없어진다. 완성차 대기업의 이익 배분만 다루는 교섭이라면 부품사와 하청, 비정규직과 미조직 노동자에게 산별교섭은 자신과 무관한 일일 뿐이다. 반대로 AI 전환처럼 산업 전체의 미래가 걸린 의제는 개별 기업이 혼자 답할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의제야말로 초기업교섭이 왜 필요한지를 사회적으로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가 된다.

 

두 개의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단체교섭은 조합원의 현재 이익을 지키고 늘리는 제도다. 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조합원이 아닌 추상적 전체 노동자를 위해 자기 조합원의 이해를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 공공상생연대기금도 조합원의 희생을 강요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운동의 사회적 위신을 높이고 노동조합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를 증명한 선택이었다.

 

나는 좋은 교섭은 두 개의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공간의 울타리’다. ‘우리’ 회사와 ‘우리’ 사업부, ‘우리’ 조합원을 넘어 같은 산업과 공급망, 지역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이해를 교섭 안으로 가져와야 한다.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금속산업 최저임금이 바로 그런 시도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울타리’다. 올해의 임금과 성과급을 넘어 5년 뒤의 일자리와 숙련, 노동시간과 생산체제를 교섭해야 한다. 그 단초는 이미 요구안 안에 있다. 문제는 이 의제들을 임금과 성과급 교섭의 부수 의제가 아니라 교섭의 중심축으로 세울 수 있느냐다. 교섭의 시간을 올해에 가두면 피지컬 AI가 도입되고 일자리가 사라진 다음에야 고용보장을 외치게 된다.

 

성과급을 더 많이 확보하는 노조는 유능한 노조일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바꿀 노동의 미래를 사업장과 고용형태를 넘어 함께 교섭하지 못한다면 그것만으로 시대를 이끄는 노조라고 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