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자동차산업의 위기와 교훈
독일 자동차산업이 ‘종말론’까지 대두될 정도로 큰 위기에 빠졌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아우디 등 기라성 같은 브랜드를 가진 독일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세계적인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산업전환 시기에 레거시 업체들이 기술 리더십을 잃고 경쟁 구도가 바뀌는 전조로 보이기 때문이다. 왜 독일 자동차산업은 위기에 빠졌을까? 여기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작년 독일의 승용차 생산량은 호황기였던 2016년에 비해 30%가 줄어들었고, 3분기 영업이익률은 76%나 감소했다. 이는 노동시장에 그대로 영향을 미쳤다. 2019년에 비해 작년 말 자동차산업의 인력은 10만 명 이상이 감소했고, 2035년까지 12만 5천 개의 일자리가 더 사라질 수 있다고 독일 자동차산업협회(VDA)는 경고한다.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겪으면서도 강한 회복력을 보여주었던 독일 자동차산업이 이번에는 다르다. 왜 그럴까? 이번 위기는 일시적 경기 변동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위기의 원인으로는 보통 세 개를 든다. 산업전환의 실패, 높은 노동비용 및 중국의 부상이 그것인데, 노사가 찍는 방점은 다르다.
어느 나라에서나 그런 것처럼 회사는 높은 노동비용을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독일의 노동비용이 높아 경쟁력을 잃고, 급격히 부상하는 중국에 시장을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VDA의 부품사 설문조사를 보면 응답 회사의 75%가 국내 투자를 연기·축소·취소했으며, 그 이유로 높은 인건비를 가장 많이 꼽았다(58%). 실제로 독일의 노동비용은 경쟁국가 중 가장 높다. 2025년 시간당 평균 65유로로 미국의 1.5배, 일본의 2.8배, 중국과는 6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 회사는 해외로 나갈 계획을 세우고, 국내에는 인원 감축, 임금동결, 공장 폐쇄 등 강력한 비용절감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이에 반해 노조는 경영진에 책임을 돌린다. 전동화와 디지털화로 가는 산업전환에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중국에 경쟁력을 잃고, 독일 자동차산업의 가장 큰 수익원이었던 중국시장을 내준 것이 위기의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노동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산업전환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영전략이 문제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 자동차산업의 전환역량은 미흡하다. 내연차 시대에 누렸던 기술 강국으로서의 독일의 위상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배터리, 소프트웨어, 인공지능 등 미래차 첨단기술의 리더십은 중국으로 넘어갔다. 중국의 자동차시장은 전기차 중심으로 바뀌었고, 산업전환에 뒤처진 독일의 판매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독일의 강점인 내연기관차의 수요는 줄어들고, 전기차는 중국에 밀렸기 때문이다. 2018년에 비해 현재 중국에서 독일의 판매량은 1/3 이상이나 감소했고, 전기차 점유율은 5%밖에 안 된다.
누구의 진단이 맞을까? 노동비용보다는 전환역량을 문제 삼는 노조의 진단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내연차 시대에는 독일이 높은 노동비용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자동차시장을 선도하지 않았나. 그만큼 기술적 우위를 갖고 고급 제품을 내놓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은 경쟁력의 핵심이며, 지금 중국의 경쟁력도 전동화와 디지털화의 기술적 우위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위기의 책임이 어디에 있든, 당장 회사를 살리기 위해 노조는 양보교섭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력한 비용절감 프로그램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이와 함께 2025년 9월 금속노조와 VDA는 위기 극복을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여기에는 전기차 구매 확대를 위한 인프라 구축과 구매지원금 및 배터리 셀 개발 지원 등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과 함께 EU에는 2035년까지 내연차 신규 판매를 금지한다는 규정을 완화할 것을 요청했다. 독일의 강점인 내연차의 기술 수명을 연장하고 벌과금을 축소하기 위함이다. 독일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로비활동을 벌였고, EU가 2035년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100%에서 90%로 완화하는 개정안을 내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환경단체는 노사정의 경쟁력·일자리 담합으로 ‘기후정의’는 사라졌으며, 이러한 연장책은 산업에도 전혀 도움이 안 될 거라고 비판한다. 산업전환을 늦추면 미래차 영역에서 중국의 경쟁력에 더욱 밀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자동차산업이 과연 위기를 극복하고 과거의 위상을 되찾을 수 있을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나 독일의 위기는 레거시 업체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준다.
첫째, 자동차산업과 일자리의 미래는 전환역량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독일의 위기는 전동화와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산업전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미래차의 핵심 기술인 배터리 셀과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경쟁국에 밀린다. 특히 중국의 부상은 위협적이다. 레거시 업체들은 전환역량이 부족하면 내연기관 시대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는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반생태적 업체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현대차그룹은 판매량 세계 3위로 잘 나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위기에 빠진 폭스바겐을 제치고 곧 2위로 올라설 거라는 예상도 많지만, 현대차그룹의 전환역량은 아직은 미지수다. 글로벌 전기차 판매를 보면 BYD가 테슬라를 밀어내고 세계 1위로 올라섰고, 중국 외 시장에서도 현대차그룹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 국내 전기차 시장에서도 올 상반기 중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작년에 비해 180%나 증가했고, 시장점유율은 8.2%가 늘어나 35%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국내산 전기차 점유율은 6.4%가 감소했다.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현대차그룹의 미래는 알 수 없다.
둘째, 전환역량을 위해서는 국내에 안정된 공급망이 구축되어야 한다. 중국의 성공비결은 원자재, 배터리, 반도체, 소프트웨어와 전동화 부품 등 전체 산업 생태계를 자국에 조성, 안정되고 긴밀한 가치사슬 체제를 구축한 데 있다. 이는 빠른 혁신을 가능케 하고, 부가가치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무역 갈등과 지정학적 갈등이 심한 요즘과 같은 시기에는 결정적인 경쟁우위가 요소가 된다. 국내의 안정된 공급망은 중소부품사의 혁신 능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정부와 완성차업체의 중소부품사들에 대한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완성차업체의 단가인하 압력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높은 전환비용을 부품사에 전가하려는 것인데, 이리되면 중소부품사의 투자와 혁신 잠재력은 고갈된다.
셋째, 비용적 관점은 전환역량의 성장을 막는다. 산업전환을 시장에 맡기면 단기적 비용절감의 관점에서 이루어져 실패하기 쉽다. 독일의 완성차업체들은 2010년대 초 전동화 전략을 세울 때, 배터리 셀의 자체 개발보다는 해외(특히 중국과 한국)에서의 수입을 선택했다. 비용적으로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이 되고 말았다. 비용적 관점은 단기적으로는 이익이 될지 몰라도 지속가능한 전략은 아니다. 계속해서 외주화에 의존하게 되어 자체적 혁신역량은 사라지고, 결국 종속체제가 되고 만다. 레거시 업체들이 가격 경쟁으로 가서는 승산이 없다. 기술과 산업 생태계 혁신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는 산업 공동화가 될 것이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