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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모델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베네수엘라의 21세기 사회주의 모델


  

                                                                        김영수 정책연구원 자문위원(경상대)


  


1. 국가에 의존하는 다양한 대안모델


기업이 망하고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생활이 불가능한 것인가? 자본주의가 아닌 세상은 우리들의 생활을 피폐하게 할 것인가? 한국은 OECD에 속하는 나라인데, 노동자․민중들의 생활은 왜 늘 허덕거리면서 여유가 없는 것일까? 이러한 모든 의문들은 시장과 국가에 중독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 볼 때 자연스럽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은 역사적으로 위기를 맞거나 극복하면서 존재해 왔다. 국가는 그 중심에서 공을 세웠다. 시장이 위기 상황에 처하면 국가가 소방수로 나서서 불을 끄고, 시장을 활성화하면서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다. 자본주의 체제의 국가와 시장은 본디 한 몸이거늘, 국가가 자본과 시장을 위해 행동대장의 역할을 하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국가와 시장이 따로따로인 것처럼 착각하곤 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국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망한 기업에게 공적자금을 투여하여 회생시키고 회생한 기업을 다시 자본에게 팔아넘기거나, 아니면 국민의 혈세로 국가기간산업을 발전시켜 자본에게 팔아넘기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국가에 의존하는 전략의 끈을 놓지 않는다.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에 발생했던 대표적 사례에 불과하지만, 기아그룹 및 대우그룹에게 어마어마한 공적자금을 투여하고 난 이후에 자본에게 넘겨준 경우, 4대 부문(금융 / 기업 / 공공 / 노사 부문) 개혁이라는 이름하에 국정교과서, 종합기술금융, 송유관공사, 포항제철, 종합화학, 한국중공업, 담배인삼공사, 한국통신 등을 사유화한 경우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을 아주 헐값으로 매입하였고, 현재는 지분배당의 방식으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가고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대부분의 대기업이 망할 경우, 예를 들면 삼성자동차나 쌍용자동차 등도 국가가 나서서 기업을 회생시켜 새로운 자본에게 사유화하곤 하였다.


어떠한 유형의 경우에서도 사유화가 진행될 때는 시장의 작동이 국가보다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저변에 깔려 있다. 비대해진 국가 부분이 경제의 효율적 운용에 장애물로 등장한다는 소위 국가실패(state failure)는 일찍이 탈국유화가 주장되던 전후의 시기에서부터 사유화의 근거가 되어 왔다. 그러나 시장에만 맡기는 것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가 커지자 시장만능주의는 거꾸로 공격받게 되었고, 소위 시장실패(market failure)는 거꾸로 국가개입주의적인 전략이 다시 요구되는 근거로 제시된다. 시장실패와 국가실패를 거듭하며 시장과 국가가 문제의 근원과 해법으로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시장/국가 대당 논리 속에서는, 기껏해야 순수한 시장도 완전한 국가 소유도 문제라고, 시장이 주도권을 가지도록 사유화는 승인하되 이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가 통제(state regulation)가 필요하다는 식의 결론밖에 다른 해법이 나올 수가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이나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은 이러한 경우에 맞닥뜨릴 때마다 다양한 수준에서 대안을 말하였다. 국가가 나서서 망한 기업을 국민기업으로, 지역기업으로, 노동자기업 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가는 소유주가 불분명하거나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그러한 대안 자체를 아예 무시한다. 국가는 자유 민주주의 체제의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사적 소유제도의 수호신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노조운동이나 진보적인 정치세력들은 시장과 국가를 넘어서는 대안을 경시한다. 대부분의 세력들은 시장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국가가 최적의 대안이라는 함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너무나 급진적인 대안은 노동자․민중들의 정서에 조응하지 못하고, 또 노동자․민중들 스스로 사적 소유의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에서 사회투자국가론을 통해 국가와 시장의 절충모델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세력들도 있다. 대표적 이론가인 기든스(Giddens)와 에스핑 앤더슨(Esping-Andersen)은 국가의 역할을 시민의 자구노력을 촉진하거나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것에서 찾았다. 즉 “국가가 자본의 세계화와 함께 발생된 제조업의 위축, 지식기반경제의 확대로 인한 고용위기의 심화, 공공부문의 고용축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투자적 지출을 확대시켜 고용을 늘리고 동시에 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을 견인하여 복지재정을 확충하는 선순환구조를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사회투자국가의 복지정책은 기회의 평등을 추구하되, 기회는 반드시 책임을 동반하도록 하고, 재분배는 나태함을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를 보상하는 원칙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런데 김수행과 김영순은 사회투자국가론을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영국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재정안정과 조세부담 경감에 대한 일관된 수용으로 정부재정의 긴축재정이 미덕으로 자리하게 되었으며, 노동운동으로부터 사회적 민주주의의 결별을 선언하는 것이었고 한국적 지형에서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를 강화한다.” 사회투자국가론은 자본주의 국가 스스로 시장의 기능을 담당하라는 것이다. 국가는 필요한 경우에 시장과 협력하든지 경쟁하든지 하면서 총자본의 활동역량을 강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차베스 정권은 국가에 의존하면서도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전략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집행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을 정착시키고 있다. 주요한 배경은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피폐화된 노동자․민중들의 고통이었다. 물론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전략과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 자체가 계급투쟁의 지난한 과정이다. 차베스 정권의 21세기 사회주의 모델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국가가 계급투쟁의 주체로 나서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전략과 정책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네수엘라는 시장과 국가를 넘어서는, 특히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전략과 정책으로 사회화 모델의 다양한 토대들을 강화하고 있다. 국가와 시장을 넘어서는 베네수엘라의 대안적 전략과 정책들은 한국의 노동자․민중들뿐만 아니라 다른 세상을 꿈꾸는 모든 사람들이 21세기 사회주의를 상상과 이상으로 다가가지 않고 아주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로 다가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2.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자․민중의 민주주의 모델


21세기 사회주의는 민중주의나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가 아니라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다. 베네수엘라는 2005년에 21세기 사회주의를 선언했고, 민중이 주인되는 참다운 세상을 건설해 나가고 있다. 베네수엘라의 헌법은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사회를 지향한다. 베네수엘라 헌법의 전문은 21세기 사회주의 사회의 형태 및 국가의 역할과 의무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민주적이고 참여적이고 국민이 주인이 되고 다인종적이고 다문화적인 사회와 정의롭고 분권적인 연방제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공화국을 다시 창설할 고귀한 목적을 가진다. 이 국가는 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위해 자유의 가치들, 독립, 평화, 연대, 공공선, 국토의 보존, 공생, 법의 지배를 강화할 것이다. 그리고 생활권, 노동, 문화, 교육, 사회정의, 평등을 보장한다.” 진정한 자유가 보장되고 모두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21세기 사회주의라고 본 것이다. 헌법 제2조는 전문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여 규정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법과 정의에 기초한 민주적 사회국가로서 생명, 자유, 정의, 평등, 연대, 민주주의, 사회적 책임 그리고 인권과 윤리, 정치적 다원주의의 보편적 실현을 법질서와 집행의 최고 가치로 삼는다.”


이 외에 헌법에 규정된 주요 조항과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헌법 299조의 인간의 전면적 발전의 보장, 제20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의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제102조의 모든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의 발전과 민주적 사회에서 그들의 인격의 완전한 행사에 대한 강조, 제62조의 민중의 참여가 개인과 집단 모두의 완전한 발전을 보증하는 참여를 획득하는데 필요한 방법이라는 선전,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민주적 계획과 참여예산의 확신, 제70조의 상호협동과 연대의 가치에 의해 인도되는 연합의 형태의 사례로서, 자주관리 공동경영, 모든 형태의 협동조합에 대한 강조, 135조에 지적된 바와 같이, 연대, 사회적 책임, 인도주의적 지원의 가치에 의해 사적 개인들이 능력에 따라 일할 의무 등 20세기 사회주의의 요소들이 이상적 형태로 볼리바르 헌법에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베네수엘라가 건설하고자 하는 사회는 21세기 사회주의이다. 그 사회는 다음과 같은 구성요소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나가고 있다. “작업장 내에서 민주적 결정(자본주의적 지시와 감독 대신에), 활동의 목적에 대한 공동체의 민주적 지시(자본가들의 지시 대신에), 필요를 충족시킬 목적의 생산(교환의 목적 외에), 생산수단의 공동 소유(개인적 또는 집단적 소유 대신에), 민주적․참여적․주체적 형태의 정치(사회 위에 군림하는 국가 대신에), 그리고 인간 잠재력의 발전에 대한 집중(물건의 생산 대신에) 등 이 모든 것들이 새로운 유기적 체제, 즉 진정하게 인간적인 사회의 팔다리인 것이다.” 레보위츠는 베네수엘라가 수립하고자 하는 사회의 형태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각 개인이 자신의 완전한 잠재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이다. 이러한 사회는 창조적 잠재력이 절대적으로 작동, 인간의 욕구와 욕망이 완전하게 작동, 목적 그 자체만으로도 인간의 능력이 발전한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파편적인 인간들이 충분하게 발전한 인간들로 대체될 것이다. 민중들은 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에서 자신에게 영향을 주는 각종 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생산 활동의 목적을 자신의 목적과 일치시켜 나갈 수 있다. 민중들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환경과 자기 자신을 동시에 변혁하고, 새로운 사회의 주체로서 자신을 생산하게 될 것이다.”


차베스는 2005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 세계사회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연설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를 강조하였다. “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 제 확신은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 내에서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사회주의, 즉 평등과 정의가 있는 진정한 사회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저는 또 그것이 민주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미국이 강요하는 것과 같은 민주주의는 아닙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를 재창조해야 합니다. 그것은 옛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가 아닙니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을 바탕으로 우리가 새로운 체제를 건설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는 나타날 것입니다.”



3. 국(공)영 기업에 대한 노동자․민중의 감독모델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이름까지 변경하고 베네수엘라 경제체제의 전략을 헌법 229조에서 규정하였다. “베네수엘라 볼리바르 공화국의 경제체제는 사회정의, 민주화, 효율성, 자유경쟁, 환경보호, 생산성과 연대의 원칙을 바탕으로 한다. ....... 국가는 민간의 창의성을 존중하고 국민경제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략은 시장의 절대성을 맹신하지 않고 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조응할 수 있는 시장을 구현하려 하였다. 왜냐하면 베네수엘라의 시장주의자들은 그 동안 국가를 악의 근원으로 강조해 왔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시장의 절대화를 지향하면서 국가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자들, 그 중에서도 신자유주의 기수인 고메스(E. Gomez)는 『베네수엘라의 경제전략과 사회정치적 구조』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다. “ 첫째, 국가는 보통 사적 부문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설사 국가가 예외적으로 효율적인 사례일지라도 국가의 행동은 윤리적 관점에서 불행한 것이고 개인의 자유의 발전을 위축시킨다. 둘째, 국가의 성장은 장래 베네수엘라 사회에 던져진 가장 큰 위협이다. 셋째, 몇몇 기업인들이 국가의 보호주의를 이용하려는 경향은 정치에 있어서 이른바 좌파문화와 스페인적 국가주의적 유산의 일부를 이룬다. 넷째, 가격 시스템은 사회 세포조직의 본질이다.”


그러나 차베스 정부는 시장 자유주의를 내세우면서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던 구조를 대대적으로 수술하였다. 차베스 정부는 들어서자마자 국영석유회사에 대한 에너지․광업부의 감독권을 재확인하고 강화하였다. 그 동안 국영 석유회사가 법인체로 운영되면서 온갖 특혜와 뇌물을 뿌리는 거대한 복합기업, 국가 안의 국가로 군림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베스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의 주식을 모두 소유하기로 하였다. 헌법 제303조에서 ‘경제적, 정치적 주권과 국가적 전략을 이유로, 국가는 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또는 석유산업의 운용을 위해 창설된 기관의 주식의 전부를 보유한다. 단, 계열회사와 베네수엘라 국영회사의 비즈니스 발전의 결과로 구성되거나 이미 구성된 다른 회사들, 특히 전략적 제휴 회사의 주식은 예외로 한다.’ 차베스 정부는 그 동안 국영 석유회사에 대한 초국적 자본의 지배구조를 국가의 지배구조로 변화시켰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국가의 기간산업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국가가 보유하기로 결정하였다. 헌법 제302조는 주요 산업의 국유화 조치가 정당하다는 법률적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국가는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석유산업과 기타 산업, 채굴, 공공적 이익과 전략적 성격의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관련 법률이 허가하는 한도 내에서 자체 보유한다. 국가는 재생 불가능한 자연자원의 채굴을 기반으로 하는 원자재 국영 제조업을 발전시킨다.”


차베스 정부는 국영 석유회사의 지배구조를 변화시켜 국영 기업들에 대한 감독권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주요 국가기간산업에 대한 국유화 조치의 법률적 근거를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차베스 정부는 국(공)영 기업의 감독을 실질적으로 단행할 수 있는 시민권력까지 강화시켰다. 헌법 제273조에서 규정하고 있지만, 시민권력은 민중의 수호자, 검찰총장, 감사원장으로 이뤄진 공화국 윤리위원회에 의해 행사된다. 시민권력의 기관은 민중수호청, 검찰, 감사원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기관들의 장은 공화국 윤리위원회에 의해 1년의 임기를 가지면 재선이 가능한 조건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그리고 민중수호청의 장인 민중수호자는 다음과 같은 권능을 가지고 있다. 헌법 281조 2항에서 “공공사업이 적절히 기능하는지의 여부를 감독하고, 공공행정의 업무수행 중 벌어진 독단 행위, 권력 남용, 과실 등에 의해 개인의 합법적이며 집합적, 광범위적인 모든 이익과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한다.” 그리하여 베네수엘라의 국(공)영 기업은 국가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감독 하에서 노동자․민중들의 가난을 퇴치하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4. 사적 소유를 넘어서는 공동경영모델 


차베스는 노동자 공동경영을 21세기 사회주의로 나가는 중요한 단계라고 강조하였다. 노동자 공동경영은 생산과 기술에 대한 문제를 결정하는 것도 우리 노동자들이고, 우리의 관리자를 선출하는 것도 바로 우리 노동자들이다. 그리고 노동자 평의회는 노동자 공동경영의 실험에서 핵심적 부분이다. 회사의 예산을 짤 때도 각 부서의 노동자 평의회에서 기존의 제안을 토론하고 수정해서 회사의 요구에 제대로 들어맞는 예산을 만든다. 이처럼 베네수엘라의 노동자 공동경영은 노동자들이 공장을 통제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가 추구하고 있는 사회경제는 다음과 같은 요소로 표현되고 있다. 차베스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사회경제는 대안적인 경제인데, 그것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협력에 기초해서 사업을 친환경적으로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수단을 공동의 소유한 상태에서 민주적이며 자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고 잉여소득을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데, 그 중심에 서 있는 정치권력은 경제와 독자적으로 존재․운영되면서 대안적 사회경제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정부는 2007년 헌법 개정안에서 5가지의 소유형태를 제시하였다. 첫 번째는 공적소유로서 국가기관의 소유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전체로서의 민중과 미래 세대의 소유로 정의되는 사회적 소유였다. 이 소유형태는 간접적 사회적 소유와 직접적 사회적 소유로 구분되었다. 간접적 사회적 소유는 국가가 공동체를 대신해서 운영하는 소유이다. 직접적 사회적 소유는 도시가 소유권을 행사하는 도시적 소유와 꼬뮌이 소유권을 행사하는 꼬뮌적 소유로 나누어졌다. 세 번째는 집단적 소유였다. 이것은 사회집단이나 개인 집단의 소유이다. 집단적 소유의 예로는 협동조합을 들 수 있다. 네 번째 소유는 혼합적 소유였다. 이것은 다른 여러 가지 형태의 소유가 혼합되어 있는 경우였다. 다섯 번째는 사적 소유이다. 사적 소유는 자연인이나 법인에 속한 소유이다. 여기에 소비재뿐만 아니라 생산재도 포함된다. 헌법 제307조에서 대토지소유제가 사회적 이익에 반하는 것으로 규정한 이유도 대안적 사회경제모델의 연장선이다. 


베네수엘라 정부는 사회적 소유라고 하는 것을 전체 민중적 소유와 국가적 소유를 구분한 것인데, 차베스는 사회적 소유의 예로 베네수엘라 석유공사(Pdvsa)를 들고 있다. “Pdvsa는 사회적 소유로서 국가에 의해 관리되지만, 소유는 모든 시민의 것이다.” 하지만 차베스는 사적 소유를 폐지하고 계급이 없는 사회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었다. 2004년에 타리크 알리(Tariq Ali)와 한 인터뷰에서 차베스는 이렇게 답변했다. “저는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은 수정돼야 합니다. 현실이 날마다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날 베네수엘라에서 우리의 목표가 사적소유 폐지나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입니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 때문에 제가 빈민들, 즉 이 나라를 부유하게 만든 노동을 한 사람들(그들의 노동이 부분적으로 노예 노동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을 전혀 도울 수 없을 것이라고 누군가가 저에게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우리는 의견이 다르군요.” 


차베스가 지향하는 대안적 사회경제모델은 노동자․민중들 스스로 국가권력을 변화시켜 나가는 주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노동자․민중들이 사회의 각 영역에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단지 경제권력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도 갖고 있어서, 모두 자신들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공무원들, 사법부, 군대, 경찰 같은 위계구조들의 원활한 기능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가기구들은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하기 위해 노동계급 출신들을 뽑아 쓸 필요가 있지만, 그런 위계구조들의 꼭대기는 소수 자본가 특권층과 결탁되어 있다. 그래서 차베스는 아래로부터의 운동으로 이런 국가기관을 개혁하도록 하였다. 노동자․민중들이 공동경영 및 협동조합의 주체로 나서는 것도 대안적인 사회경제의 모델을 실현하는 주요 방안이었다.


2004년 베네수엘라에서 노동자관리, 자주관리, 공동경영, 연합한 생산자들에 의한 생산이 점차 현실화되어 가고 있다. 2004년 현재까지 인베팔(국영제지회사), 까다페(국영전력회사), 까델라(까다페의 자회사), 알까사(알루미늄 제련기업) 등의 기업들에 대한 노동자 관리체제가 도입되고 있다. 노동자들은 생산에서 협력하고 자기 활동의 수혜자가 자본의 소유자가 아니라 노동자들 자신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노동자 관리는 생산활동을 조직하는데 있어서 훨씬 우월한 형태라고 간주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적 착취가 없으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해 주변의 노동자들과 협력하고 가능한 한 일을 적게 하기보다는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둘째, 일을 더 잘하는 방식에 관하여 자신의 머리에 노동자들이 갖는 지식, 자본가들과 공유하지 않는 지식은 직접적으로, 그리고 미래의 혁신을 위한 생산을 개선하는 데 끌어낼 수 있다. 셋째, 감시하는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감독 감시자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생산이 효율성이 아니라 감독하기 쉽도록 조직하는 정도에 따라, 이것과 자본주의의 다른 특징들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넷째, 노동자관리는 구상과 실행을 결합시킬 가능성을 제고시키고, 작업장에서 구상하는 사람과 실행하는 사람 간의 분열을 종식시킨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들이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을 개발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측면에서 노동자 관리는 더 높은 생산성과 혁신을 촉진할 수 있다.” 국영부문의 흥미로운 대표적 사례는 전력공급의 서비스이다. 노동자들은 제대로 가동되지 않고 있던 전력공급회사를 자신들이 더 잘 운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회사 지점 가운데 안데스 지역의 까델라에 있는 지점은 그런 견해가 가장 강력하게 표명된 곳으로, 아주 잘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까다페 지점은 그리 잘 운영되지 않는다. 그 회사를 운영하는 문제나 전력산업을 노동자들이 통제해야 하는지 아니지를 둘러싸고 노동자들과 기업주들 사이에 투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은 노동자를 생산과 운영 및 소비의 주체로 나서게 하는 대표적 경우이다. 차베스 집권 이전에는 아예 실업상태이거나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착취당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직장의 주인이 되어 벌어들인 것을 동등하게 나누어 가지게 된 것이다. 협동조합은 2004년 차베스 정부의 사회경제 프로그램인 미션 부엘반 까라스의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뜻이 맞는 지역민들이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을 세워 정부에 제출하면, 정부는 이를 검토한 뒤 지원한다. 협동조합들은 정부로부터 운영자금을 무이자로 대출받고, 건물과 장비의 구입은 국영석유회사가의 도움을 받았다. 차베스 집권 전에 200개 정도였던 협동조합의 수가 2006년 현재 전국에 10만 개가 넘는다. 베네수엘라 성인 인구의 10% 이상이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증가로 실업률이 1999년 16.6%에서 2007년 1월 현재 11.1%로 감소하였다.



5. 베네수엘라의 대안모델의 함의


세계경제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케인스주의적 합의(Keynesian consensus)의 위기와 이 틈을 비집고 나온 범지구적 통화주의(Global Monetarism)의 라틴아메리카 판은 이른바 워싱턴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라는 정책처방으로 귀결되는데, 이것의 핵심은 라틴아메리카 경제위기의 원인을 국가부문의 과잉성과 경제적 포퓰리즘에서 찾았다. 수입대체산업화의 정책도구였던 국영부문이나 보호주의 그리고 정부의 각종 규제정책이 바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주적이다. 경제위기는 만성적인 재정적자에 기초한 민중주의적 재분배정책과 더불어 노동자들에 대한 임금통제력의 상실 때문에 가속화되었다는 것이다.


워싱턴 컨센서스에 편승한 민영화 바람은 비단 국영기업을 민영화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민영화의 대상은 보건, 사회보장, 교육제도를 포함하여 우편, 항만시설, 전력, 전화, 교통망 등의 공공 서비스와 사회간접자본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역을 포괄하였다. 공공재의 사유화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근의 민영화 바람을 목격하면서도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폭이 얼마나 넓은지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이다.


그런데 베네수엘라의 대안모델은 국가의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강조함과 동시에 국민을 국가권력과 생산의 주체로 변화시키려 하였다. “계급갈등의 산물, 대상이자 결정 요인인 국가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전개되는 계급투쟁의 복합적 구실을 담당한다. 왜냐하면 노동계급의 정치적 도전은 국가구조의 역사적 발전에 영향을 미쳤고, 국가의 실제 구조는 자본주의적 이익의 단순한 반영이 아닌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계급투쟁의 모순된 반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새로운 사회의 대안모델은 공동체적 필요와 목적에 부응할 수 있는 권력을 수립해야 하고, 그러한 권력을 그 사회의 국민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위로부터의 개혁 혹은 아래로부터의 개혁이라는 전략적 관점을 넘어서서, 노동자․민중 스스로 ‘자기의 권리를 지배하고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적 주체로 변화되어야 한다. 베네수엘라는 그러한 사회적 주체를 다음과 같은 방식, 예를 들면, 민중적 토대로부터 형성되고 관리되는 자치권력, 지역사회의 참여와 함께 하는 권력 운영, 공동체 조직․협동조합․자주관리 등의 체제로 생산․관리․소비 간의 공동체 관계를 구축하는 권력, 그리고 인간과 노동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생활경제체제 등의 방식으로 21세기 볼리바리안 사회주의 사회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의 대안모델도 국가의 복합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적지 않은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체제의 구조가 혁명적으로 변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공)영 기업들이 언제든지 민영화될 수 있는 한계이다. 차베스 정부는 몇몇의 주요 국(공)영 기업들을 국유화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대안적 사회경제를 모색하고 있지만, 자본주의적 생산관계조차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의 입장에서 볼 때, 언제든지 차베스 정부를 공격하고 압박하여 또 다시 국가의 정책 수준에서 국(공)영 기업들을 민영화할 수 있다. 둘째, 자본에 대해 근본적으로 공격하거나 압박하지 않는 한계가 드러날 수 있다. 차베스 정부는 자본가 계급을 실질적으로 공격하지 않고 있다. 단지 차베스 정부는 정부예산으로 노동자․민중을 지원하는 정책, 예를 들면, 무상교육 및 무상의료 등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래서 정치권력이 친 자본적인 세력에게 넘어갔을 경우, 정책적인 수준에서 전복될 수 있는 한계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