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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 단축의 쟁점과 정책과제

노동시간 단축의 쟁점과 정책과제

  

전국금속노동조합 노동연구원 홍석범

  

  

1. 들어가며

  

익히 알려져 있듯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일을 하는 나라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0년 우리나라 취업자 1인당 연평균 실노동시간은 2,193시간으로 OECD 평균 1,749시간에 비해 444시간이나 많다. 이것은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할 경우 OECD 평균에 비해 55.5일을 더 일하는 것으로 1년에 ‘열 네 달’을 일하는 것과 같다.

두 번의 큰 선거가 치러지는 올해의 정치정세 속에서 노동운동은 자본과 정부의 무관심과 탄압 속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다양한 노동의제를 힘 있게 주장하고 있고, 그 한 가운데에는 ‘장시간노동’이 자리 잡고 있다. 양대노총은 노동시간 단축을 핵심의제로 설정하였고, 우리 금속노조 또한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노동 규제’를 대정부 요구안으로 제시하며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권과 노사정테이블에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관한 활발한 논의들이 이뤄지고 있는데, 노사정위원회가 올해 3월부터 실근로시간단축위원회를 가동시키는가 하면 제 정당들은 모두 노동시간 단축을 총선 공약으로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도 지금까지 부정해왔던 휴일노동의 연장근로 산입을 올해 초부터 주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종전에 고수해왔던, ‘9월 정기국회에 근기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는 입장’이 얼마 전 ‘충분한 의견수렴 절차를 거쳐 입법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후퇴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장시간노동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유례없이 의제화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러한 활발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전개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크게 두 가지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 정치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노동시간 단축의 정책 목표가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19대 총선 당시 각 정당별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내용적으로, 논리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형세를 띠고 있다. 그 과정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지금의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 주장해왔던 기본적인 가치인 ‘건강권과 재생산권, 인간답게 살 권리’가 유실되고 있다. 둘째, ‘일자리 창출’에 논의가 집중됨으로 인해 실제 장시간노동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여러 사회집단들이 담론의 장에서 탈각됨과 동시에 적어도 노동시간 단축과 관련해서는 ‘일자리의 질’에 대한 논의가 부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후술하겠지만 단축된 총량의 노동시간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노동시간 공학에서는 현재 일자리의 질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이상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본 글에서는 장시간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담론의 프레임과 정책방향이 어떻게 설정되어야 하는지에 관하여 논구하고자 한다. 아래에서는 우선 제19대 총선 시기 정당별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살펴보고 현재 노동시간 단축 정책프레임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한다. 그 다음으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반드시 조명해야할 우리나라 장시간노동의 다양한 문제 지점들을 살펴볼 것이며, 마지막으로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지향해야 할 담론의 프레임과 정책 방향을 시론적으로 제언하고자 한다.

  

  

2. 정당별 노동시간 단축 관련 총선공약 평가

  

총선 시기 각 정당의 공약은 향후 집권정당의 정책과 함께 입법과정에서 제 정당 간에 형성될 쟁점들을 예비하는 좋은 지표가 된다. 아래에서는 지난 제19대 총선 시기에 제시된 제 정당들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을 비교하고 평가함으로써 현재 정치권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어떠한 프레임 속에서 전개되고 있으며 어떠한 한계를 노정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새누리당은 이번 총선에서 “근로시간을 줄여 근로자의 행복을 높이겠습니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실근로시간 단축’, ‘교대제 개선’, ‘유연근로시간제 확대’라는 정책 목표를 제시하였다. 구체적으로 실노동시간을 단축하는 중소제조업체에게 임금감소분을 일부 지원하거나 주야2교대제를 실시하는 중소기업이 교대제를 개편할 경우 한시적으로 전환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밖에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방안과 심야노동 금지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것뿐만 아니라 휴일근로를 주10시간으로 축소하는 방안까지 병렬적으로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휴일근로에 대해 서로 모순되는 정책을 동시에 제시하는 한계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심야노동 금지의 경우에는 현행 근로시간특례업종과 마찬가지로 공익사업 및 특정업종 등 광범위한 예외 사업장을 이미 예정하고 있어 이 또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정책 대상 및 범위에 있어서도 제조업 부문의 중소기업만을 주된 지원 대상으로 삼고 있고 지원기간 또한 한시적인데, 앞서 노동자의 행복을 표어로 삼은 것 치고는 공약의 내용이 상당히 빈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노동시간 단축 공약은 대동소이하다. 민주통합당은 “고용률을 선진국 수준인 70%로 높이겠습니다”는 캐치프레이즈 아래에 ‘실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공약을 제시하고 있고, 통합진보당 역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창출 특별법 제정”이라는 기조 하에 세부 정책들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의 풍부함에 있어 다소 차이가 있기는 하나 두 정당 모두 ‘법정근로시간제도의 확대 적용’과 ‘근로시간특례업종 및 예외규정 범위의 축소와 폐지’, ‘연장근로를 포함한 실노동시간의 상한선 설정 및 최소휴식시간의 확보’, ‘교대제 개선’ 등에 관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특히 앞서 새누리당과는 대조적으로 노동시간 정책의 기본원칙으로서 연장근로를 포함한 실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과업과 과업 간에 최소한의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내용을 포함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더 나아가 통합진보당은 5인 미만 영세사업장까지 법정노동시간을 확대적용하고 소득보전기금 설치를 통해 임금수준을 보전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노동시간 단축만을 강조할 경우 장시간노동을 해소하는 일련의 정책들이 저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위험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내재해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위와 같은 공약 내용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 단축 정책의 기조와 구체적인 공약 실천방안에 있어서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모두 ‘일자리 창출’을 우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민주통합당은 실근로시간 단축의 정책목표가 “근로시간 단축형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137만개의 일자리 창출”에 있음을 명시하고 있고, 통합진보당 역시 연장근로 제한, 교대제 개선, 야간노동 최소화 등과 같은 정책들이 “일자리 확대와 연결되도록” 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두 정당 모두 공약 실천방안으로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특별법’을 제안하고 있는데 이미 그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는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고 있다. 

요약해보면, 근래 정치권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는 서로 상충될 여지가 있는 두 가지 목표가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바로 ‘노동자의 건강권 및 재생산권 보장’과 ‘일자리 창출’이다. 둘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지에 따라서 논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는데 문제는 작금의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자와 같이 노동시간 단축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노동자의 재생산권,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실현하는 것에 둘 경우에는 장시간노동이 야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기존의 일자리든 새로운 일자리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데에 논의가 집중된다. 반면 일자리 창출을 핵심 목표로 삼는 경우에는 기존의 장시간노동 자체를 규율하고 그 줄어든 노동시간의 총량을 ‘새로운’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으로 논의가 좁혀진다. 특히 노동시간을 일자리로 전환하는 산술적 계산 하에서 그 일자리가 얼마나 좋은 일자리여야 하는지는 고용 창출 그 자체의 덫에 묶여 부수적으로 다뤄지게 된다는 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이 지금 우리 사회가 반드시 풀어야 할 난제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시간 단축이 지향해야 할 제1의 목표가 되는 것은 상당히 문제적이다. 기존에 장시간노동이 널리 퍼져 있는 저질의 일자리 문제를 해소하지 않는다면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그 크기가 한정된 작은 파이를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나눠먹는 식의 결과만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일자리’인가, 아니면 ‘양질의 일자리’인가? 단순히 긴 시간 일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일자리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작금에 제시되고 있는 노동시간 단축 공약과 정책은 이에 대해 충분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3. 우리나라 장시간노동의 현황과 문제점

  

그렇다면 향후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무엇을 대상으로, 그리고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가? 오늘날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노동시간 현황과 장시간노동의 문제 지점들을 살펴봄으로써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해보도록 하자.

  

1) 사업체 규모별 장시간노동 현황 

  

2011년 8월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평균 주당 노동시간은 41.94시간이다. 그러나 사업체 규모, 고용형태, 업종 등에 따라 그 편차는 매우 다양하게 나타난다. 먼저 사업체 규모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을 살펴보면, 5인 미만 사업체가 41.18시간,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체가 42.53시간, 10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체가 42.05시간,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체가 41.68시간,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가 43.68시간, 300인 이상 사업체가 40.94시간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의 노동시간이 가장 적고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의 노동시간이 가장 긴 것으로 나타났다. 

법정노동시간(주40시간) 및 초과노동시간(주12시간)을 기준으로 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300인 이상 사업체의 초장시간노동자(주53시간 이상) 비율이 12.3%로 가장 낮은 반면 5인 미만 사업체는 23.9%,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체는 21.5%,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는 20.2%로 초장시간노동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종사자 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5인 미만 사업체 및 10인 미만 사업체의 초장시간노동자는 각각 787천 명, 630천 명으로 300인 이상 사업체의 230천 명에 비해 6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따라서 사업체 규모에 있어 현재 장시간노동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는 곳은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5인 미만 사업체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및 휴게에 관한 규정이 일체 적용되지 않는 사각지대라는 점에서 장시간노동이 가장 심각하게 방치되고 있다.

한편,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의 초장시간노동은 업종별 특성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제조업 및 운수업 종사자의 비율이 매우 높은데, <표 6>에서 보는 바와 같이 300인 미만 사업체 전체 1,720천 명의 임금노동자 중 제조업이 578천 명, 운수업이 172천 명으로 각각 33.6%, 10.0%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및 운수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노동시간이 매우 길 뿐만 아니라 해당 업종 내에서도 다른 규모의 사업체에 비해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의 노동시간이 가장 긴데, 바로 이러한 업종의 특성이 사업체 규모별 노동시간에 반영된 것이다.

  

2) 고용형태별 장시간노동 현황

  

다음으로 고용형태별 노동시간에 대해서 살펴보자. <표 3>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1년 8월 현재 정규직이 43.20시간, 비정규직이 40.66시간으로 정규직의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그러나 일주일에 53시간 이상 일하는 초장시간노동에 있어서는 정규직이 17.4%(1,482천명), 비정규직이 20.9%(1,758천명)로 비정규직이 정규직에 비해 더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의 대립범주로 분류되지만 실제로는 내부에 매우 다양한 고용형태를 포괄하고 있다. 위와 같이 평균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할 경우 정규직에 비해 노동시간이 짧지만 노동시간을 범주화 할 경우 오히려 비정규직이 보다 높은 초장시간노동 비율을 보이는데 이는 비정규직 내부에서도 세부적인 고용형태에 따라 노동시간의 편차가 매우 크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또한 구체적인 유형별로 세분화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고용형태별 주당 평균 노동시간의 경우, 용역이 46.30시간으로 가장 길고 그 다음으로 파견 44.09시간, 장기임시직 41.29시간, 한시노동 39.70시간 등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노동시간 범주별로 살펴볼 경우에도 역시 용역(31.4%)과 파견(25.4%), 장기임시직(22.6%)의 초장시간노동 비율이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직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보다 장시간 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이다. 한편 비정규직 내에서도 시간제노동(21.26시간)이나 가내노동(30.66시간), 호출노동(36.25시간) 등은 상대적으로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하여 노동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노동자 수를 기준으로 할 경우 파견 및 용역 부문의 초장시간노동자는 258천 명으로 정규직 중 초장시간노동자인 1,482천 명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이를 바탕으로 간접고용의 장시간노동이 전체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석대상 자료인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서는 사회적으로 간접고용 문제가 가장 심각하게 부각되는 사내하도급이 정규직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통계상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그 중 상당수가 사내하도급이며, 실제 간접고용 부문의 노동시간 문제는 지표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훨씬 심각한 수준임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다.

2006년 노동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자동차업종 하청업체 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원청업체 노동자의 107.1%(원청업체 210시간, 하청업체 225시간), 기계․금속업종은 103.0%(원청업체 229시간, 하청업체 236시간)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조업은 다른 업종에 비해 장시간노동이 보다 만연한데, 그 속에서 사내하도급 노동자는 원청업체 노동자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2010년 8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조사대상 사업장 중 사내하청을 활용하는 원청업체의 노동자는 100만여 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326천여 명으로 원청노동자 대비 사내하청 노동자가 32.6%의 비율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는 통계상 하도급업체의 정규직으로 분류되지만 실질적으로 간접고용 성격을 띠고 있는 노동자의 비율이 상당하다는 점을 짐작토록 한다. 이에 비추어보면, 사내하도급을 포함할 경우 간접고용의 규모 및 장시간노동 문제는 통계로 드러나는 것에 비해 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래의 <표 4>는 고용형태를 사업체 규모별로 세분화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정규직의 경우, 5인 미만 사업체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4.67로 가장 긴 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다음으로 100인 이상 300인 미만(44.38시간), 5인 이상 10인 미만(44.21시간), 10인 이상 30인 미만(43.15시간), 30인 이상 100인 미만(42.62시간), 300인 이상(41.76시간)의 순으로 나타났다.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집단을 제외하면 기업규모가 클수록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짧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비정규직의 경우 5인 이상 10인 미만 규모의 사업체가 41.53시간으로 가장 긴 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그 다음으로 100인 이상 300인 미만(41.42시간), 10인 이상 30인 미만(40.99시간), 5인 미만(40.39시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비정규직 유형별로는 파견, 용역 부문이 사업체 규모에 관계없이 다른 비정규직 형태에 비해 노동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는데, 파견의 경우 5인 미만(46.31시간), 30인 이상 100인 미만(46.02시간), 100인 이상 300인 미만(45.34시간) 규모의 사업체가, 용역의 경우에는 30인 미만(47.44시간), 5인 이상 10인 미만(46.66시간), 5인 미만(45.56시간) 규모의 사업체가 다른 규모의 사업체에 비해 상당히 장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파견노동자 190천여 명 중 64천여 명(33.7%)은 5인 미만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으며, 용역노동자 667천여 명 중 484천여 명(72.6%)은 30인 이하 사업체에 소속되어 있다. 파견 및 용역에 있어 이들 규모의 사업체가 가장 긴 시간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본다면, 간접고용 역시 기업규모가 작고 영세한 곳에서 장시간노동 문제가 보다 더 심각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파견 및 용역을 제외하고는 사업체 규모에 관계없이 장기임시직 및 한시노동자의 노동시간이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것으로 나타났다.

  

3) 업종별 장시간노동 현황

  

다음으로 업종별 노동시간 분포에 대해 살펴보자. 아래의 <표 5>에서 보는 바와 같이 21개 산업대분류 중 가장 긴 시간 일을 하는 업종은 ‘운수업’으로 나타났는데, 주당 평균 노동시간이 48.31시간으로 전 산업 평균(41.94시간)에 비해 6.37시간 더 많이 일하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 ‘숙박음식업’의 노동시간이 46.18시간으로 두 번째로 긴 것으로 나타났고, ‘제조업’(44.82시간), ‘시설관리업’(44.74시간) 또한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길었다.

일주일 평균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초장시간노동에 있어서는 ‘숙박음식업’이 전체 40.6%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었고, ‘운수업’(34.5%), ‘제조업’(22.5%), ‘시설관리업’(25.4%), ‘부동산임대업’(24.0%), ‘협회단체개인서비스업’(28.2%) 또한 다른 업종에 비해 초장시간노동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주40시간 이하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국제 및 외국기관’으로 80.4%의 노동자가 주40시간 이하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교육서비스업’(78.9%), ‘전기가스수도업’(69.9%), ‘금융보험업’(69.5%), ‘전문과학서비스업’(68.8%) 또한 주40시간 노동자 비율이 비교적 높은 업종이었다. 한편, 초장시간노동자 비율이 높았던 제조업(43.1%), 운수업(34.8%), 숙박음식업(38.7%)은 주40시간 이하 노동자 비율 또한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표 6>은 업종별 노동시간을 사업체 규모별로 세분화하여 보여주고 있다. 주요 장시간노동 업종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우선 제조업의 경우 100인 이상 300인 미만(45.70시간), 30인 이상 100인 미만(45.56시간) 등 중소규모 사업체의 노동시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고, 5인 미만 영세사업체(42.22시간)나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44.31시간)는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운수업의 경우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가 52.58시간으로 가장 긴 시간 일하고 있었으며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체 또한 49.64시간으로 비교적 장시간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인 미만 사업체(44.72시간)나 10인 미만 사업체(42.92시간)는 다른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노동시간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관리업의 경우 10인 이상 30인 미만 사업체(46.23시간),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체(45.83시간)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길었고 100인 이상 300인 미만(40.45시간), 300인 이상 사업체(39.88시간)의 경우 다른 규모 사업체에 비해 비교적 적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숙박음식업의 경우 30인 이상 100인 미만 사업체의 노동시간이 50.55시간으로 가장 길고 5인 미만 사업체(44.39시간) 및 300인 이상 사업체(42.51시간)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상의 결과는 하나의 업종 내에도 사업체 규모에 따라 노동시간 편차가 폭넓게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울러 숙박음식업을 제외하면 위의 주요 장시간노동 업종들 모두 노동자가 가장 많이 분포해있는 규모의 사업장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장시간노동의 분포에 있어 업종이나 기업규모 각각이 아닌 둘 간의 상호작용 효과를 살펴봐야 함을 시사한다.

  

4) 장시간노동을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 근로기준법상 제 예외 규정

  

한편, 업종별 노동시간 분포는 노동시장 외부의 제도적 효과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 사실 장시간노동 문제가 가장 심각한 업종인 운수업, 숙박음식업은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른 근로시간 특례의 대표적 업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설관리업은 파견 및 용역과 같은 간접고용이 가장 활성화된 업종인 동시에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근로시간 규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감시단속 업무의 노동자들이 속한 업종이다. 이는 특정 업종의 장시간노동이 제도적으로 허용된 근기법상 노동시간 규정의 사각지대로부터 비롯됨을 시사한다.

근로기준법은 ①적용범위(제11조), ②특례조항(제59조), ③적용제외(제63조) 조항 세 가지를 통해 근로시간 규정의 사각지대를 제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우선 ‘적용범위’에 있어 근로기준법은 기본적으로 상시노동자 5인 이상 사업장을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일부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으나 근로시간 및 휴게 규정은 제외된다. ‘특례조항’은 특정 업종에 대하여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 및 휴게시간의 변경을 허용하고 있으며, ‘적용제외’ 조항은 특정 업종 및 직종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및 휴게, 휴일 규정 전반의 적용제외를 명시하고 있다. 

5인 이상 사업체만을 규율하는 적용범위 규정이 사업체 규모별 –특히 5인 미만 사업체와 다른 규모의 사업체 간- 노동시간 격차와 영세사업체의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하나의 원인이라면, 특례조항 및 적용제외 규정은 특정 업종 및 직종의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후자의 제도적 장치는 현재의 장시간노동을 방치할 뿐만 아니라 향후 여러 업종이나 직종에 대해 장시간노동을 보다 확대시킬 여지가 있는 ‘잠재적 위험요소’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표 7>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1년 8월 사업체노동력조사에 따르면 근로기준법 제59조의 특례 업종에 종사하는 임금노동자 수는 최소 549만여 명에 이르며,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해당 시점에 우리나라 임금노동자는 전체 1,690만여 명이다. 즉 임금노동자 3명 중 1명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전체 임금노동자의 3분의 1이 12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와 초장시간노동에 상시적으로, 잠재적으로, 제도적으로 노출되어 있음을 뜻한다.

물론 모든 특례업종이 실제로 심각한 장시간노동에 처해 있지는 않다. 예를 들어, 교육서비스업과 금융보험업의 주40시간 노동자 비율은 각각 78.9%, 69.5%로 다른 업종에 비해 상당히 높으며, 주52시간을 초과하는 초장시간 노동자 비율 또한 각각 4.3%, 4.4%로 전체 21개 산업대분류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표 5> 참조). 뿐만 아니라 제조업은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지 않음에도 주당 52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는 노동자 비율이 22.5%에 달할 정도로 장시간노동의 문제가 심각한 업종이다. 

이를 두고 근로시간 특례업종과 업종별 장시간노동의 편차가 실제로 얼마나 밀접한 관계가 있는지를 반문해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업종별 장시간노동 실태와 특례업종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 향후 해당 업종의 장시간노동에 대한 잠재적 위험까지 제거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운수업, 시설관리업, 숙박음식업은 장시간노동이 가장 심각한 업종인 동시에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는 업종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는 장시간노동의 실태뿐만 아니라 제도가 허용하고 방치하고 있는 잠재적인, 광범위한 장시간노동의 사각지대를 염두 해야만 한다.

  

5) 장시간노동과 임금의 관계

  

다음으로 노동시간과 임금의 관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장시간노동은 저임금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아래의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노동시간과 임금은 음의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시간당임금이 낮을수록 노동시간이 길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장시간노동에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가 저임금 상황에 봉착할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사업체 규모별 임금에 있어 2011년 8월 현재 전체 임금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은 202.8만 원으로 나타났으며, 300인 이상 규모의 사업체에 종사하는 노동자가 329.6만 원으로 가장 높은 임금을 보였고 반대로 5인 미만 사업체 노동자가 121.9만 원으로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있었다. 시간당임금 또한 마찬가지로 사업체 규모가 작을수록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평균 노동시간은 10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체가 가장 길지만 일주일에 53시간 이상 일하는 초장시간노동자 비율은 5인 미만 사업체(23.9%), 5인 이상 10인 미만 사업체(21.5%)가 다른 규모의 사업체에 비해 높으며, 5인 미만 사업체의 경우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이 21.8%로 다른 규모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이는 영세한 사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일수록, 특히 전일제 노동자일수록 보다 심각한 장시간노동과 저임금의 이중고에 노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고용형태별 임금에 있어서는 정규직이 월평균 271.6만 원, 비정규직이 133.0만 원으로 나타났다. 비정규직 유형별로는 특수고용 노동자가 180.1만 원으로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비교적 높았고 그 다음으로 한시노동(140.3만 원), 간접고용(129.6만 원), 호출노동(105.5만 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시간제노동과 가내노동의 월평균임금은 각각 60.6만 원, 52.4만 원으로 다른 비정규직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한편, 시간당임금의 경우에는 가내노동이 5.2천 원으로 가장 낮았으며, 간접고용이 7.3천 원으로 두 번째로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간접고용의 경우 다른 비정규직 유형에 비해 비교적 높았던 월평균임금과는 달리 매우 낮은 수준의 시간당임금을 받고 있었다. 이는 월평균임금만으로 비교할 경우 간접고용 노동자의 장시간노동이 가려지는 착시효과가 존재할 수 있음을 뜻하며, 앞서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간접고용 노동자가 실제의 노동시간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임금 상황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업종별 임금을 살펴보면, 전체 임금노동자의 월평균임금이 202.8만 원으로 나타난 가운데 전기가스수도업이 359.8만 원으로 가장 높은 임금을 받고 있었고 그 다음으로 전문과학서비스업이 309.6만 원, 금융보험업이 305.6만 원, 출판영상방송업이 281.3만 원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자가소비생산활동(76.9만 원), 농림어업(103.9만 원), 숙박음식업(116.0만 원), 시설관리업(141.0만 원)의 경우에는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금 수준을 보이고 있었다. 시간당임금의 경우에도 자가소비생산활동이 5.7천 원으로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고 그 다음으로 숙박음식업(6.2천 원), 농림어업(6.4천 원), 시설관리업(8.1천 원)이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시간당임금을 받고 있었다.

한편, 5인 미만, 10인 미만의 영세사업장, 그리고 간접고용 노동자가 노동시간이 상대적으로 긺과 동시에 임금수준이 매우 낮은 것과 마찬가지로 장시간노동을 하는 업종과 저임금 또한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간이 가장 길고 초장시간 노동자의 비율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던 운수업, 숙박음식업, 제조업, 시설관리업 모두 월평균임금 및 시간당임금이 다른 업종에 비해 낮기 때문이다. 제조업과 운수업의 경우 임금수준이 전체 21개 산업대분류 중 중간수준에 위치하고 있지만 노동시간이 각기 첫 번째, 세 번째로 길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제 일하는 시간에 비해 임금수준이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 사업체 규모, 고용형태, 업종별로 간략하게나마 살펴본 노동시간 실태에 따르면 장시간노동 문제는 영세규모, 간접고용 비정규직, 제조․운수․숙박음식업․시설관리업 등에 종사하는 노동자에게 가장 심각한 것으로 요약된다. 그리고 이는 장시간노동을 허용하는 제도적 장치 및 해당 부문의 임금구조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사업체 규모, 고용형태, 업종 각각의 특성들 또한 서로 맞물려서 장시간노동에 작용하고 있다.

이를테면, 숙박음식업에 종사하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45.6%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체에 속해 있으며 월평균임금 및 시간당임금이 매우 낮은 수준이다. 낮은 임금수준과 근로기준법의 미적용이라는 제도적 장치는 해당 부문의 사용자로 하여금 노동자에게 저렴한 값으로 보다 긴 시간 일을 하도록 만들며, 노동자는 적절한 생활임금을 확보하기 위해 초장시간노동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시설관리업의 경우에는 고용형태 및 근로시간 적용 제외 규정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데 시설관리업 전체 1,072천 명의 임금노동자 중 65.9%(706천 명)은 파견, 용역과 같은 간접고용 노동자이며(반대로 전체 857천 명 간접고용 노동자 중 82.4%인 706천 명은 시설관리업 부문의 노동자이다), 근로기준법 제63조에 의해 제 근로시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감시단속적 노동자는 시설관리업으로 분류된다. 

한편, 제조업 및 운수업의 경우에는 다른 업종에 비해 주당 평균 노동시간(각각 44.82시간, 48.31시간)이 길고 초장시간노동자의 비율(각각 22.5%, 34.5%)이 높은 것과는 달리 사업체 규모가 영세하거나 간접고용 비율이 높지는 않다. 특히 고용형태에 있어 숙박음식업이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높고 시설관리업이 파견, 용역과 같은 명시적인 삼면적 고용관계의 비율이 높은 반면, 제조업의 경우에는 전체 3,387천 명 중 70.0%(2370천 명)가 정규직이며, 운수업은 전체 709천 명 중 63.6%(451천 명)가 정규직일 정도로 비정규직의 비율이 낮은 편이다. 그러나 제조업과 운수업의 시간당임금 및 월평균임금은 (시설관리업이나 숙박음식업에 비해서는 다소 높은 수준이라고 할지라도) 해당 부문의 장시간노동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인데 여기에는 해당 부문의 임금구조 문제가 수반되는 것으로 이해된다. 가령 제조업의 경우 비록 전일제의 정규직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기본급이 주로 시간단위로 산정되며 전체 임금총액에서 기본급 및 통상임금의 비율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숙박음식업과 마찬가지로 낮은 임금수준은 적정 생활임금의 확보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잔업 및 특근을 강제하는 효과를 갖는데 이것이 해당 부문의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것이다. 반면 사용자는 제한된 설비를 최대한 활용하고 수요 변화에 따른 물량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설비투자나 공장증설 및 신규채용 보다는 맞교대, 잔업․특근 등의 노동시간을 유연하게 조직화하는 것을 선호한다.

위와 같이 장시간노동의 문제지점은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이는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정책을 꾀함에 있어 복잡한 노동시장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뜻하며, 반대로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목표로 삼아야 하는 대상집단이 사전에 세분화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아래에서는 노동시간 단축 정책이 위와 같은 노동시장 상황 및 장시간노동의 문제지점에 입각하여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논의해보도록 하겠다.

  

  

4. 정책제언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노동시간 담론의 목표가 일자리 창출이 아닌 건강권과 재생산권에 보다 집중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현재 일자리의 질’에 방점이 찍혀야만 한다. 그리고 이는 장시간노동이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문제지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설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본 글에서는 ①‘노동시간 정책의 대전제 설정’, ②‘법정 노동시간의 사각지대 해소’, ③‘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노동시장 및 작업장 관행 및 제도 근절’, ④‘장시간노동에 대한 2층적 규율 강화’라는 네 가지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방향 및 과제를 제언하고자 한다.

첫 번째 정책방향은 ‘노동시간 정책의 대전제 설정’으로 모든 노동자에 적용되는 법정 노동시간의 기본원칙, 즉 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수립․천명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정책과제로서 ‘노동시간 상한제’ 및 ‘최소 휴식시간제’를 들 수 있는데, 주․월․분기․연을 단위로 어떠한 경우에도 초과할 수 없는 실노동시간의 상한선을 설정하고, 일일 소정근로 또는 소정의 과업과 과업 간, 근로주간(週間) 간에 어떠한 경우에도 제한할 수 없는 실휴식시간의 하한기준을 설정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 제도적 사각지대를 허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와 별개로 법이 규율하고 있는 노동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것이 널리 퍼져 있는 상황에서 예외 없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되는 최소한의 노동시간 기준을 수립하는 데에 그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한편, 예외 없는 노동시간 단축은 당장의 임금감소 문제를 쟁점화 하게 되는데, 특히 중소․영세사업장의 경우 사업체의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하기 때문에 노동시간 상한선 설정이 해당 사업체 노동자의 근로빈곤을 지속시키고 동시에 저질의 새로운 일자리를 양산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노동시간 상한제 및 최소 휴식시간제를 실시하는 중소․영세부문 노동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정부가 생활보전기금을 수립하여 지원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중소․영세사업장이 적절한 지불능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중소․영세사업체를 대상으로 한 컨설팅 및 세제지원, 대기업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원하청불공정거래 규율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주의할 점은 사업체의 지불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의 인상만으로는 저임금부문 노동자의 생활 및 소득보전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것인데, 국가가 주체가 되는 여타의 복지정책 및 저소득가구 보호 정책과 사용자를 규율하는 최저임금,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지원정책을 연계하는 방안이 고민되어야 한다. 

한편, 사업체 규모가 큰 곳, 특히 제조업 부문의 대공장에서는 생산물량 및 임금 감소를 둘러싸고 교섭테이블에서 노사 간 대립이 심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를 위해 임금체계 개편을 지원하여 낮은 기본급과 잔업․특근을 유도하는 시급제를 월급제로 개편하고, 신규 공장 및 설비를 증설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주야맞교대 등의 교대제를 4조3교대, 주간연속2교대 등의 교대제로 전환하는 것과 신규 투자를 통해 사업장의 공장 및 설비를 증설하는 것은 노동시간 단축과 함께 신규채용이라는 일자리 창출을 수반하게 되는데, 교대제 전환, 신규고용, 설비투자에 대한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부여함으로써 선순환적 노동시간 단축을 일궈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중소․영세사업체의 지불능력 고취와 대공장의 임금구조 및 교대제 개선, 저임금 부문 노동자에 대한 복지연계 지원 정책을 마련하는 것은 기존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데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같은 내용의 노동시간 단축 정책을 두고 그 목표가 ‘일자리 창출’과 ‘기존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 둘로 나뉠 경우, 후자를 전자로부터 차별화하는 핵심은 바로 위와 같이 장시간노동의 문제지점들에 대한 보호 정책들을 얼마나 두텁게 마련하는지 여부라고 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정책방향의 두 번째는 ‘법정 노동시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 제 규정의 다양한 예외조항 및 적용제외 범위를 상정하고 있다. 본 정책방향은 노동시간 정책의 대전제 위에서 기존에 제도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다양한 예외 및 적용제외 규정들을 제거해가는 것을 뜻하는데, 사업체 규모와 업종에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단일한 노동시간 기준의 적용을 받도록 하는 구체적 방안들이 포함된다. 

먼저 ‘근로시간특례 및 적용제외 업종 감소 및 단계적 폐지’를 들 수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근로기준법 제59조에 따른 근로시간특례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최소 549만여 명에 이르며, 이는 전체 임금노동자의 31.4% 수준이다. 운수업과 숙박음식업, 시설관리업(그 중에서도 청소업)은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포함되어 있는 동시에 장시간노동 문제가 매우 심각하게 나타나는 문제지점이며, 휴일 없는 장시간노동으로 현재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의 판매서비스직 노동자 또한 근로시간 특례업종에 속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 제63조에 따른 근로시간 적용제외 규정은 시설관리업 부문 경비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의 장시간노동과 연관된다. 특히 특례업종은 비단 현재의 장시간노동을 제도적으로 허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향후 특례업종에 포함된 다른 업종의 장시간노동까지도 잠재적으로, 예비적으로 허용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기대 효과가 가장 집중되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조항 확대 적용’을 통해 사업체 규모에 관계없이 임금노동자라면 누구든 사각지대 없이 동일한 노동시간 규정을 적용받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2011년 8월 현재 5인 미만 사업체에 속한 임금노동자는 329만여 명으로 전체 임금노동자의 5분의 1에 이르며, 이 중 일주일에 52시간을 초과하여 일하는 노동자는 787천 명이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5인 미만 사업체를 적용대상에서 제외하면서 근로감독 및 행정상의 편의를 보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개별적 노동관계의 최저 기준을 규율하는 법률의 취지에 우선할 수 있는 것인지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비록 시행령 제7조를 통해 일부 규정을 5인 미만 사업체에도 적용하고 있으나 노동생활의 기초이자 인간존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시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 것은 법률의 취지와 크게 모순된다. 따라서 모든 노동자가 업종이나 사업체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노동시간 규정을 적용받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헌법 및 근로기준법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노동시간 정책의 기본원칙을 세움에 있어 사업체의 지불능력, 근로감독 및 행정상의 편의에 관한 문제는 오히려 부수적인 문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셋째,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관행 및 제도를 일소하는 것’이다. 장시간노동을 허용하고 방치하는 법률적 장치와 별개로 노동시장 주체들 사이에 존재하는 관습이나 관행, 제도들이 장시간노동을 야기한 측면도 크다. 우선, 정부의 휴일근로에 대한 행정해석을 들 수 있는데, 그동안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제55조에 따른 유급휴일에 일을 한 경우 이를 제53조 제1항의 초과근로로 산입하지 않았다(행정해석 근기 68207-2855, 2000.9.19.). 서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근 고용노동부가 입법을 통해 휴일노동을 초과근로에 산입하고자 추진하기도 했지만 정부의 기존 행정해석을 새로운 행정해석이 아닌 그 상위에 있는 입법을 통해 변경한다는 점 자체로서 이미 정부의 의지가 부족하다는 점을 명확히 했고 그 조차도 재계의 반발로 지지부진한 상태에 빠졌다. 한편, 일부 사업체에서 활용되고 있는 포괄산정임금이 장시간노동을 유도하기도 한다. 포괄산정임금 방식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에는 근로계약서상 명시된 소정근로시간을 제외한 초과근로가 포괄산정되는 임금에 산입되는 변칙이 활용되는데, 특히 간접고용 부문에서는 삼면적 고용관계로 인한 계약의 불명료성 때문에 포괄임금산정이 널리 악용되고 있다. 그밖에 연차유급휴가 사용의 미진함이 장시간노동을 야기하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노동자 개인이나 가족의 일 외적인 삶보다 기업조직을 생활의 우위에 두면서 연차유급휴가 사용을 다소 부정적으로 보는 우리나라의 기업문화와 휴가보다는 연차유급휴가수당을 받는 것을 보다 선호하는 노동자의 태도가 결합하면서 장시간노동이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용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을 통해 휴일노동을 초과근로로 산입하고, 포괄임금산정시 법내 소정근로의 한도를 초과하는 초과근로를 포괄임금에 산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규를 수립하며, 사용자의 연차유급휴가 사용 촉진을 강행규정으로 설정하여 노동자가 정해진 기한 내 연차유급휴가를 사용하지 않을 때에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노동자의 연차유급휴가 사용을 소진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상당부분의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장시간노동에 대한 2층적 규율방안’을 들 수 있다. 이는 노동시간 제도 및 관습을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다른 장치들을 통해서 규율해가는 것을 뜻하는데, 구체적으로 ‘정부의 장시간노동 실태조사 및 근로행정 강화’와 ‘초과근로수당 할증률 조정’을 들 수 있다. 우선 ‘정부의 장시간노동 실태조사 및 근로행정의 강화’와 관련하여, 장시간노동을 규율하는 위의 여러 제도적 장치들이 노동현장에 효과적으로 도입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의 관리감독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례적인 장시간노동 실태조사 및 장시간노동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근로감독 및 처벌이 요구되는데, 실제로 최근 고용노동부가 실시하고 있는 업종별 장시간노동 실태조사 및 발표는 정보수집과 더불어 장시간노동 사업장에 대한 처벌효과를 보이고 있다. 향후에는 조사통계가 비교적 용이한 대규모 사업장에서 더 나아가 주요 장시간노동 업종의 영세규모,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도 조사의 규모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편, 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또 다른 2층적 규율 방안으로 ‘초과근로수당 할증구간 신설 및 할증률 증가’ 방안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높임으로써 장시간노동의 활용을 억제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현행 초과노동에 대한 할증률을 일일 또는 주당 초과노동시간 구간별로 누진함으로써(예를 들면 주당 초과노동의 경우 일주일에 0-4시간의 초과노동에 대해서는 통상임금의 50%, 4-8시간에 대해서는 75%, 8시간 이후의 초과노동에 대해서는 100% 할증률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초과근로에 따른 사용자의 비용부담을 높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지불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기업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한데, 특히 비용부담에 따른 역선택이 기업의 신규채용으로 이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일자리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정부의 유인기제와 관리감독이 병행되어야만 한다.

  

  

5. 나가며: 노동시간 단축 프레임 새롭게 짜기

  

사실 위에서 제언한 ‘법정 노동시간의 적용 확대’, ‘근로시간특례업종 및 예외규정 범위 축소 및 폐지’, ‘실노동시간의 상한선 설정’, ‘최소휴식시간의 확보’와 같은 사항들은 이미 총선 당시 제 정당에서 제시한 공약 내용과 차이가 없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정책이라고 하더라도 장시간노동 문제에 접근하는 프레임에 따라 그 목표는 서로 달라질 수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노동시간 정책의 핵심목표는 ‘일자리 창출’에 있으며, 이들의 공약선전물에는 사회적으로 노동시간의 총량을 줄임으로써 그 부분을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연결짓겠다는 의지가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는 방안일지언정 그것의 목표가 일자리 창출에 있다면 기존의 일자리와 새롭게 만들어지는 일자리의 질은 전혀 개선될 여지가 없다. 단지 그 크기가 한정된 작은 파이를 더 많은 사람이 나눠먹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모든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역사였다. 1866년 제1인터내셔널대회에서 맑스가 앞으로의 노동자 형편의 개선과 해방을 위한 모든 노력이 좌절되지 않기 위해 반드시 예비되어야 할 조건으로 규정한 것도 노동시간의 제한이었고, 노동절 제정의 시초가 된 1886년 시카고 총파업 역시 노동시간 단축이 제1목표였다. 뿐만 아니라 1970년 전태일 열사가 분신으로 우리 사회에 각인시킨 노동현장의 참혹한 실태는 바로 어린 소녀들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저임금의 장시간노동에 빠져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오늘 우리 노동운동 역시도 장시간노동을 해결하기 위한 힘겨운 싸움들을 이어가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 프레임이 일자리 창출이 아닌 노동자 재생산권과 기존 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전환하는 것이 되는 순간 장시간노동 문제는 새로운 담론의 장으로 들어서게 된다. 지금은 노동시간을 일자리 창출로 연결 짓는 노동공학이 아니라 노동시간의 사각지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이들을 바라볼 노동인간학이 필요한 시점이다.